성장이라는 이름

by 설유

이어폰을 끼고 걷는다.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은 채.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소리도, 공허함만 남기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냥 나와 세상 사이에 투명한 벽을 하나 세운 기분.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모르게 흘러가 버린 하루의 끝. 불 꺼진 방 안, 핸드폰 불빛만 켜 놓은 채 누워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지쳐간다. 하루를 버티는 일이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진다. 이유를 딱히 짚을 순 없지만, 그냥… 그런 날이다.


예전의 어렸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뭐가 좋은지 싫은지도 비교적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뭔지도 흐릿하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맞긴 맞는데,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자꾸만 멀어진다.


울고 싶은 건 아닌데 자꾸 눈이 시큰하다. 웃고 있는 중에도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감정이 감정 같지 않다. 그저 마음속 어딘가가 천천히 어두워지는 느낌.


“요즘 애들은 고민도 없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잠깐,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고민이 없어서 괴로운 게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고민이 있어서 더 괴롭다.

마음속은 온통 복잡한데, 겉으론 괜찮아 보이는 게… 가끔은 더 외롭다.


친구들은 언제나 빛나는 하루를 사는 것 같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어쩐지 외로워진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고민들이 나만의 그림자인 듯, 그 누구도 함께 걷지 않는 길처럼 느껴진다.

혹시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한 걸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끝없는 질문들이 밤하늘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고, 나는 그 속에 조용히 갇혀버린다.

함께 아파하고 서로의 무게를 나눌 친구가 있다면 좋을 텐데, 내 눈에는 모두가 행복이라는 빛을 가득 품은 사람들로 보인다.

그 모습이 어쩐지 부럽고, 나는 묻고 싶다. “그 빛 속에서, 너희는 어떻게 아픔을 견뎌내는 거니?”


내 마음속엔 계속해서 질문들이 맴돈다. 이 두려움과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는 순간은 언제 올까.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나면, 내가 나를 온전한 나로서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야” , “10대를 살아가는 너희가 부럽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의 10대가 정말 아름다움으로만 가득했는지.

그들도 공허함과 두려움, 설렘과 기대가 뒤섞인, 어쩌면 아팠던 기억들을 안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아픔조차 품을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 우리는 그들이 걸어왔던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만큼, 우리도 충분히 아프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마음이 요동치고, 생각은 자꾸만 길을 잃는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어떤 모습이 나다운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가끔은 어른들이 했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야.”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 같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은 단순히 ‘좋은 시절’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모든 혼란과 아픔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나는 그저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바라보고 싶다.

고통스럽지만, 이 시간을 ‘성장’이라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 말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다.

실수하고,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나를 예전엔 나조차도 쉽게 미워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모습도 나라는 사람의 일부라는 걸.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고민 속에서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걸.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가끔은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진심만큼은 잃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무섭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지금의 내가 나중에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래도 나는 내 속도를 지키고 싶다. 남들보다 느리더라도, 더디더라도, 그 모든 걸 나답게 받아들이고 싶다.

흔들린다고 해서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잠시 멈춰 서는 순간에도, 내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의미 있는 한 걸음일 테니까.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보게 될 날이 오겠지. 그때의 내가 오늘을 떠올리며

참 많이 흔들렸지만, 참 많이 애썼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진심이었던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어둡고 복잡한 터널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 끝에 도착했을 때 그 길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될 거라 믿는다.

그렇게 믿고, 나는 오늘도 내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