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채색의 무지개이다.
선명하고 쾌청한 색채의 물감이 짜여진 팔레트를 들던 조그마한 손은,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허함만을 쥐고 있었다.
아름다운 색들의 조화가 만들어낸 캔버스 속 맑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에 기대어 쉬던 어린아이는 끝을 모르는 안개 속에 갇혀 헤매인다. 현실이라는 좁고 답답한 안개 속에 갇혀버린 아이는 더 이상 무지개색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처음엔 아이는 연필 하나로도 기뻐했다. 작은 종이 위에 펼쳐지는 상상 속 세상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놀이터였다.
그러나 학교라는 작고도 질서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서, 그 아이는 점점 줄을 맞추고 틀 안에 색칠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틀린 답엔 빨간 줄이 그어졌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때부터 아이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교과서에만 색을 입혔다.
언젠가부터 팔레트엔 색이 남지 않았고, 아이는 웃는 법도 잊었다.
처음엔 그저 즐거웠다. 세상을 향한 모든 호기심이 색이 되어 흘러나왔고, 작고 투박한 손끝에서 무수한 세계가 피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점점 ‘해야 하는 일’과 ‘되어야만 하는 모습’ 속에 갇혀갔다.
점수를 따져야 했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했고, 어른들이 바라는 ‘괜찮은 아이’가 되어야 했다.
꿈은 칭찬을 받기 위한 도구로 바뀌었고, 좋아했던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기대는 늘 ‘더 잘해야 한다’는 말로 다가왔고, 그 말은 조용히 아이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어느 순간부터 반짝이던 무수한 마음속의 별들이 모두 사라진 우리는, 방향성을 잃고 배회한다.
어쩌면 우리가 입버릇처럼 ‘그때가 좋았지’ 라고 하는 이유도, 세상의 양면성을 모르는 순수했던 나 자신을 그리워하기 때문 아닐까.
성취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를 잊어버리고 시간의 틀 사이에 갇혀 방황하는 지금의 나를 회피하고 싶은 것 뿐 아닐까.
우리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벗어나는 순간 ‘게으르다’거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했고, 남과 비교당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진짜 나보다 보여지는 내가 중요했고, 그 속에서 나의 감정, 나의 욕망, 나의 목소리는 조용히 사라져갔다.무언가를 성취해도 공허함은 여전했고, 바쁘게 살아도 살아 있다는 실감은 없었다. 삶은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 되었고, 우리 마음속 반짝이던 별들은 그렇게 하나둘 꺼져갔다.
나라는 정체성을 상징하던 별들이 꺼져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끝없이 상처받고 주저앉는다.
맹목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도록 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을 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모르는 우리는 그저 사회가 바라는 대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고민과 상처는 많은데,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도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 아닐까. 흔들리고 불확실한 우리를 더욱 세찬 파도 속으로 몰아넣는 압박이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간다. 힘들어도 웃고, 아파도 침묵하고, 무너지기 직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이어간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약하다는 시선을 받을까 두려워 조용히 벽을 쌓는다.그렇게 마음속에 쌓인 것들은 언젠가 터질 줄도 모르고, 그저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왜 이토록 공허할까’라는 질문은 반복되지만,
정작 답을 찾으려 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무심히 또 하루를 넘긴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덮여만 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점점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다. 기쁘지 않아도 웃고, 화가 나도 참으며, 눈물이 나도 꾹 눌러 삼킨다.
모든 감정은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그 틀에 맞추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결국 우리는 점점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외면하는 데 익숙해진다. 자신조차 자신을 외면하는 삶.
그 안에서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남겨진 건 그냥 살아가는 껍데기뿐이다.
나 또한 특별하지 않다. 그저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점점 나를 숨기는 데만 능숙해지고, 결국엔 나조차 나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다.
힘들어도, 아파도, 포기하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과 질타가 두려워 그 어떤 감정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점점 커져가는 지인들과 사회의 기대는 나를 더 좁고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넣는다.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고 숨기는 일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에 대한 믿음은 흐려지고, 이제는 작은 한 걸음조차 주저하게 된다.
삶의 방향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나는, 말없이 흔들리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애써 웃고 있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내 속에 숨겨서 애써 감춰왔던 감정들이 이제는 내 안에서 스스로 터져 나오려 한다.
억누르기만 하던 감정들, 외면해왔던 상처들,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점점 축적되어 내 곁에 머무른다.
그래서 이제는 그 감정들과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아프더라도, 괴롭더라도, 내 자신에게만큼은 나를 터놓고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진짜 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진정한 나를 되찾는 과정은 어쩌면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꺼내보는 것, 하루의 끝에서 내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는 것.
그 작은 용기들이 모여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나를 되찾는 길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매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한다. 잠시 멈춰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잃어버렸던 나를 천천히 찾아가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남들이 정해준 기준과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이 느끼는 것에 솔직해지며, 작지만 확실한 나만의 빛을 다시 밝혀가려 한다.
그 빛이 언젠가 어두웠던 나를, 그리고 세상을 환히 비출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