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가 “잘 지내?” 라는, 어쩌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받아본 적 있지 않아?
그럴 때마다 너는 항상 그렇다는 대답을 하겠지. 솔직히 이러한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럼 내가 다시 질문할게. 너는 잘 “살고” 있어?
내가 방금 질문한, 잘 살고 있냐는 질문은 네게 있어서 살아갈 힘의 원동력, 그리고 그것이 내게 가치가 있는지를 질문하는 거야.
생각한 적 없을걸. 그리고 이 질문에서는 바로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살면서 힘들다는 생각,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수도 있지.
현대인들은, 사회와 타인이 추구하는 높고 높은 벽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달려오는데,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한 건 아니니까.
어떤 책에서 이러한 글귀를 본 거 같아.
“자신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속에서의 삶은 더욱 큰 환희를 안겨준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다고 할 수도 없어.
생명은 언제, 어디서나 존귀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걸.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과연 자신의 삶이 존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게 도움이나 될까.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 한번쯤 해본 거 알아.
그게 지나갔든, 지금이든, 언제든 간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것도 알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잃은 삶을 살고 있을 때.
마음의 조각들을 모두 불사르고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 그렇지만 눈으로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할 때.
눈부시도록 빛나는 밤의 한가운데에서는 미처 주워담지 못했던 감정들이 녹아내려 흘러.
굳건했던 산의 바위가 산산조각나듯이, 모든 감정의 부분들을 흐트려트리고, 그러고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차라리 쏟아내듯이 네 안의 감정들을 눈물로 승화시키면 마음은 편해질까,
이미 너무 많이 쏟아버린 내면의 눈물은 너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거야.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겉으로는 티내지 않아도 안에서는 너를 갈기갈기 찢고 있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암흑으로 뒤덮인 듯한 네가 만든 장벽에 부딫혀, 너는 오늘도 끝이 없는 세계로 추락하고 있어.
학교에서도, 주변 어른들도, 너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네게 삶의 소중함을 알라고 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미궁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배회하고 있어.
너다운 삶이 뭔지도, 살아야 하는 이유도, 너를 잃어버린지도 오래야.
사회, 타인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나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데,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는 자신이 너무나 쓸모없게 보여.
학교에서 사람의 삶은, 모두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배웠던 거 같은데, 전혀 와닿지가 않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해도,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시리고 아팠을 너를, 나만큼은 따뜻하게 품어 주고 싶어.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한번 만나본 적조차 없는 사이여도, 이러한 너의 아픔을 알기에,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 주고 싶어.
누구보다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너라서, 이런 삶을 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너라서.
가끔은 약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약해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굳건해 보이는 돌도 부서지고, 쓸리고, 깎이는 과정을 겪고, 가장 단단하고 부서지기 어려운 부분만 남는걸.
그러니까 나는 지금 내게, 전혀 와닿지 않을,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털어놓았을 때, 힘내라는 형식적인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거야.
나는 말 그대로, 살아갈 힘을 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완벽하지 않아도 돼. 네게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 너를 몰아붙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 있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았으면 해.
보잘것없는 내 글이, 황량한 네 삶에 아주 약간의 반짝이는 샘물이 되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