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북유럽을 회상하며(2) 스웨덴.
한동안 모델이 입은 오버핏 패션에 관심 가졌던 적이 있다. 그런 체형이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옷이 예뻐서도 아니라, 어떤 뼈대와 옷이 만들어내는 약간의 빈틈을 오래 관찰한 적 있다. 다른 껍데기를 만나도 저 정도 여유는 오래도록 머무를 것 같단 생각. 독보적인 저 사람만의 틀이 만들어진 것 같단 생각. 난 멍 때릴 때 내 손의 반지를 자주 보곤 하는데, 동그란 원형 반지에 꽉 들어차지 않는 손가락 마디와의 빈틈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안정감을 느낀다. 고정된 것들 사이로 만들어지는, 그렇다고 어떤 것이 침범할 수는 없을 정도의 작은 틈.
스웨덴 스톡홀름의 감라스탄은 작은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을의 정중앙이었던 어느 날.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외출할 땐 우산을 챙기는 게 익숙해졌던 시기였고 흐릿하다가도 하늘은 빠르게 변했다. 복잡하리만큼 아늑하게 나눠진 감라스탄 골목을 걷는데 촬영세트장에 온 듯 하늘이 바뀌는 거다. 결코 새파란 하늘이 펼쳐졌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사람과 건물, 이 모든 골목의 인공물을 빼면 남는 틈이 하늘이었던 하루. 조각조각, 빈틈을 채우는. 고정되진 않고 시시각각 움직이지만 결코 사라질 것도 아닌.
마침 걷다가 들어간 미트볼 레스토랑은 들쑥날쑥한 테이블 배치로 처음엔 불규칙해 보였으나 묘한 안정감을 줬다. 구석자리 어딘가 쯤 앉았는데 이상하게 입구가 친숙해보이는 각도에, 셀프바로 가려면 한바퀴를 빙 둘러야 하는 구조였는데 그 짧은 탐험이 즐거웠다. 음식을 기다리며 괜히 더듬어보는 테이블은 러프한 텍스쳐였고 둥글넓적한 회갈색 도자그릇을 떠올린 내 예상과 달리 타원형 흰 접시에 음식이 나왔다. 무심한듯 한껏 퍼담긴 매쉬포테이토는 미트볼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부드럽고, 부드럽다가 씁쓸했으니까.
정형화된 것보단 약간은 엉성한 틈이 만들어내는 여유가 있다. 유광보단 무광, 반듯하지 않은 볼드한 액세서리, 한껏 고정시킨 스타일링보단 헝클어진 머리카락, 유리 테이블보단 다소 긁힌 원목 테이블, 일정한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침내 반대편에 도착하면 잠시 서서 걸음을 재정비하는 엇박자, 있는 그대로의 비선형적인 사고와 흩날려 쓴 기록. 어쩌다 보니 스톡홀름에서 발견한 내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고 싶은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