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북유럽을 회상하며(3) 핀란드.
눈 쌓인 산타마을을 기대했지만 10월 말의 핀란드에게 고작 영하5도는 눈을 기대할 날씨가 아니었다. 아스팔트가 훤히 보이는 북극선, 그래도 북극선. 북극선을 넘어 패스포트에 도장을 받고 산타마을에 들어가 내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나는 스물셋이었고 지금보다 겁없이 담대한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이는 들어도 동심을 잃지 말라는 산타아저씨(?)의 흔한 한마디도 그 당시 혼자 지구 반대편에 넘어가 듣는 나에겐 큰 힘이 되었고, 로바니애미에서 헬싱키로 돌아오는 멀고 먼 야간 기차에서 내 마음은 더 용감해졌다. 열세 시간짜리 텅 빈 기차에서 몇 안 되는 사람의 술 주정과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밖이 한없이 깜깜해도 난 혹여 오로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눈을 크게 뜨고 창밖만 봤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서 혼자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헬싱키에서 머물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Satu라는 사람이었다. 고양이 테오와 함께 살고 있었고 인간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 외면할 지구의 죄책감에 맞서 싸우듯 지속 가능한 삶을 개척하는 멋있는 포토그래퍼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요가를 하고, 눈이 오지 않으면 수영을 했다. 부엌엔 정원 가꾸기와 비건 쿠킹 책이 여럿 꽂혀 있었다. 자연을 보호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 덕분에 그 공간은 덴마크에서 머물던 집 못지않게 현재의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밤새 자라있는 화분의 상추를 다음 생장에 영향 주지 않게 잘라내는 법을 배웠고, 명상이 주는 힘을 한 번쯤 유추해 보며 요가 매트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하루는 그녀의 애인이 집에 왔는데, 어둡지만 어느 공간 보다 따뜻했던 부엌에서 직접 팝콘을 튀겨 서재로 들어갔고 새어 나오는 영화 소리와 함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한 시간가량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어딜 가나 장을 보러 마켓에 가면 신선코너가 가장 먼저 펼쳐지는데, 이곳이 식품을 파는 곳인가 화분을 파는 곳인가 내가 잘못 들어온 걸까 망설였다. 겹겹이 뜯어진 채소가 아닌 모종 그대로를 판매하고 있었다. 핀란드는 항상 추우니 장 보러 나가는 외출을 최소화 화려는 노력인 걸까?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사람이 많아서인 걸까? 정원 가꾸는 사람이 많은가… 점원한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이란다. 그곳에선 자연스러운 거였다. 한번 쓰다 말고, 먹다 말고 버리는 게 아닌 것이. 요거트와 과일, 양상추를 사서 샐러드를 해먹고 남은 모종을 물에 담가뒀다. 별 생각 없이 담가뒀는데 헬싱키에서 머무는 매일 그 상추를 먹을 수 있었다. 체크아웃 할 때 사투에게 남은 모종을 건네주는데 뭔가 아쉽기까지 하더라.
지금의 내 인생 영화 탑텐 안엔 들지만, 당시 내 기준 탑 파이브 안에 들던 <카모메식당>. 나름의 영화 취향이란 게 생기기 시작하던 시기에 이 영화를 만났고 수많은 제작 과제와 공연 준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무렵 하루종일 카모메식당을 백색소음처럼 틀어두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할 일을 했었다. 산타마을까지 다녀왔으면서 남은 헬싱키의 하루하루가 과하다 싶을만큼 두근댔던 건 카모메식당 때문이었다. 카페로 개조되며 곳곳이 바뀌긴 했지만, 영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 속 토미가 항상 앉던 창가자리에 앉아 라떼와 시나몬 롤을 주문했다.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사치에가 들어올 것 같은 떨림에 한참을 창밖만 보고 있었다. 기대하던 시나몬 롤의 맛은 아니었지만 영화 속 카메모식당을 그대로 간직한 하늘색 타일, 정갈하게 놓여 있던 원두와 술, 나무테이블, 부엌의 빛. 오래 앉아 일기를 썼고 사치에의 첫 날처럼 서점으로 향하며 또다시오로라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