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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한노을 Jan 25. 2023

비행기에서, 무슨 생각 하세요?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잠시나마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늘 위에 떠있다고 생각하면 비행기란 참 결속력 있는 우연의 공간이다. 옆 사람과 영화관보다 가깝게 붙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장기 비행이라면 두 번의 식사는 물론 간식과 티타임까지 함께한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처음 뵙는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도 모든 것이 이해되는 공간, 어느 때보다 초췌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도 무례하지 않은 공간.
 
 비행으로 시작되는 여행은 이랬다. 아까 먹은 기내식이 소화되기도 전에 간식으로 나온 바나나를 욱여넣으며 이번엔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망설임. 비행기 모드라는 반강제적 세상과의 단절은 현실을 외면하기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데 기내용 헤드셋은 그들로부터 나를 단절시키기에 썩 좋은 퀄리티는 아니었다. 기내의 소음과 영화 사운드가 섞여 만들어내는 백색 소음에 한바탕 잠을 자다가 일어나 창밖을 보면 몽글한 노을과 구름이 떠있거나 평온한 하늘이거나, 그저 깜깜한 밤이거나. 그리곤 그래봤자 스무걸음 차이지만 조금이라도 소화를 시키겠다고 반대편 통로의 화장실로 걸어다녀 오는 여유로움.


대부분은 혼자였는데 어떤 비행은 달랐다. 비행기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을 상상이야 해본 적 있지만 여전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옆 사람과 친해졌다. 두 번째 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눈으로 커피를 마시던 때였다. 학생이세요? 아니요. 근데 여기는 왜 가시는 거예요? 아, 저는 멀고 멀지만 또 경유인데-로 시작해서 우린 두 시간가량 떠들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둥둥 떠서 가는데 전혀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참 즐겁더라. 시차를 거슬러 가는 건지, 어느새 시간이 지난 건지 밖엔 동이 텄다.


잠깐의 낭만과 세상과의 단절, 어떤 평온함과 고요함, 시간 낭비로 분류되지 않는 멍 때림과 수면에 무색하게 내리자마자 참 복잡한 세상이 우릴 반긴다. 덜커덩덜커덩 굴러가는 짐들 속 내 캐리어를 찾고 괜히 긴장하는 척이라도 하게 되는 입국심사와 세관신고, 긴 시간 동안 무거워진 몸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과 사소한 서류들. 이제야 목적지에 도착한 건데, 이미 다른 세상 속에 살다가 나온 것 같은 낯선 언어와 땅에 닿는 발. 공항을 벗어나면 드디어 실감하는 새로운 공기와 오늘.


피곤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런 게 여행의 시작이라면 한껏 설레기에 충분하다. 괜히 귓가에 맴도는 대한항공의 슬로건. Excellence in Flight. 모두 편안한 비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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