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보고.
죄송합니다. 카톡 방을 헷갈렸어요.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마디. 저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고 누구 하나는 지금쯤 온갖 욕을 먹으며 자책과 후회 속의 하루를 보내고 있겠구나-라는 걱정을 가장한 궁금증과 동시에, 난 조심해야지-라는 다짐을 함께 뱉어내게 되는 다소 괘씸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 방에선 되고 저 방에선 안 되는 것. 여기선 위로를 받겠지만 저기선 비난을 받게 되는 말들. 누군가에겐 드러내고 싶고 누군가에겐 감추어야만 하는 말과 행동.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두텁게도 구분된 채팅방의 존재는 왜 이리도 아찔한 양면의 기능을 가질까.
채팅은 일부에 불과하다. ‘개인 핸드폰 있어요?’라는 물음이 낯설지 않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QR찍고 오픈 카톡으로 들어오시면 안내해 드릴게요’라는 멘트가 낯설지 않은 시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 스마트폰 없이 돌아갈 수 없는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되었다. 사적인 일기와 여행, 가족과의 대화, 사진, 목소리, 내가 있는 장소, 즐겨 보는 영화부터 업무내용, 은행계좌, 금융정보 모든 것이 깜깜한 화면 안에서 번갈아가며 화려하게도 뜬다.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복잡해지는 머릿속 때론 울분에 차는 마음과 달리 홀드 버튼 하나면 다시 평화롭게 검은고요함으로 돌아가는 화면. 외형이 긁히고 부서지고 심지어 반 토막이 난다 하더라도 그 안의 모든 것들은 고요하게, 적막하게 남아있다.
잠금 풀린 스마트폰이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는 상상, 나와 가까운 사람의 손에 들려있는 상상을 하는 것만큼 벌거벗은 감정이 들기도 쉽지 않다. 무슨 잘못을 했나, 내가 언젠가 범죄라도 저질렀나? 아니 그냥, 그냥. 나보다 나를 잘 알고 한 사람의 약점이 될만한 인생사와 사생활이 함축된 기계가 심지어 무형의 형태로 세상 곳곳에 돌아다닌다는 것.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어느 범주까지 퍼지느냐에 따라 나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도착하기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그대로 사라져버리기도. 아니면 사라지고 싶을 만큼 날것의 고통 속에 발버둥쳐야 하는 시간일지도.
디지털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건 종이와 펜, 손에 만져지는 어떤 아날로그적인 것들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무형의 데이터는 이시대의 그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이 되지만, 손으로 지키려 애쓰는 것들은 내게 고귀한 만큼 희소한 것이 되어가는 세상. 머리가 복잡할 때면 괜히 디지털 디톡스 하루를 만들어본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오늘의 보안이 강화되는 것도,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것도 아니면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끄고 종이책을 넘기며 밍기적 대본다. 다시 일상의 전원 버튼을 누를 때면 평온함과 불안한 마음이 함께 맴도는 반가운 화면과 마주하지.
이번 역시 영화의 감상평이 아니다. 긴장감 넘치고 눈이 즐거웠던 오프닝 필름과 달리 점점 풀린 눈으로 뭐지-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으니. 그 영화 어때요? 라고 묻는다면 감히 온전히 집중해 내지 못해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라는 답변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찔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그 사실을 모른채 이게 편하고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웃고있는 나를 상상했고 한없이 무서워졌다. 영화를 보고 푹 자고 일어나 오랜만에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내일은 세 장만 채우면 인화할 수 있는 이 필름을 현상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