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세한노을 Mar 01. 2023

오후 3시의 나른함일까

  


오후 세 시. 하루의 중간쯤 있어서 그럴까 번잡스러울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잡담을 나누러 카페에 간 사람들의 대화가 슬슬 줄어들고, 어떤 음식점은 주문을 마감하며 브레이크타임을 갖는 시간. 직장인들의 카톡치는 소리와 괜한 스트레칭이 공존하는 시간이며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이기도 하다. 내리쬐는 햇볕과 그 아래 잠시 무기력해진 우리들.

주말의 오후 세 시는 참 애매한 취급을 많이 당한다. 아직 집에 있자니 혹은 집으로 들어가기엔 하루가 꽤나 남았고 무언가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은 애매함. 난 그 애매모호함이 좋다. 쉴만큼 쉬었는데 내일이 오려면 아직은 멀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입해야할 일은 애초에 시작할 수 없다는 핑계로 적당 여유로운 하루를 더 즐기면 되니까.


어떤 오후 세 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예상치 못한 휴일이나 몰아치게 바빴던 한 주의 일요일 오후일 경우 그 적막함은 배가 되는데, 힘없는 내 한숨소리와는 반비례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참 강해도 보인다. 그 찰나에 빠져버리면 주변의 소음은 잠시 멀어진다. 창가로 빛이 들어오고 유리잔에 일렁이는 세 시쯤의 햇살을 보고 있으면, 잠깐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 같다가도 일상의 복잡함과 곧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약간의 불안감, 노이즈 캔슬링 된 것 같은 이 시공간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함께 아른거리곤 한다. 불안감은 길고 기대와 설렘은 짧다. 무시무시한 어둠이 서서히 찾아오거나 혹은 애틋하게 아름다울 노을이 오거나. 결국 오늘의 해도 진다.


괜히 커피를 한 잔쯤 더 마셔본다. 지금의 한 잔이 오늘 밤 숙면을 방해할 시간은 아직 아니니까. 이 시간의 커피는, 커피다. 괜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쳐보는 바쁜 아침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점심 직후 능률을 올려보겠다고 한 손에 들고 움직이는 달달한 라떼도 아닌, 적막함 속 홀짝이는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의 호흡이 참 길다. 거슬릴만큼 쨍쨍한 빛은 괜히 더 얄밉고.

작가의 이전글 죄송합니다, 카톡방을 헷갈렸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