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강연을 듣고-
한창 인터넷 소설(인소)이 유행했을 무렵, 나는 그것을 읽으며 결말을 대충 세 가지로 분류했다. 해피엔딩, 새드엔딩, 열린 결말. 친구가 나에게 세 가지 중 어느 게 가장 싫냐 물으면 대답은 항상 ‘열린 결말’이었다. 그 후에도 소설, 인문학, 사회과학 등 책을 읽으며 작가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별로라 여기고는 했다. 그만큼 나는 명확하지 않은 책들이 싫었다.
밍밍하다 생각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어 맛을 잃은 핫초코처럼 목적지까지 다 와놓고 길을 잃은 이야기 같았다. 결말은 작가가 내놓은 답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열린 결말은 작가의 ‘무응답’으로 여겨졌다.
시간이 흘러 한강 작가의 노벨상 강연을 들었을 때, 문득 내가 책 속에서 잘못된 것을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는 강연에서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다’며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선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작가는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었구나. 세상을 살며 혹은 어떤 사건을 겪으며 생긴 질문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그 질문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보여주는 게 바로 글 쓰는 사람이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열린 결말을 싫어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후 얻은 깨달음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나는 수백 권이 넘는 책을 읽으면서 대체 책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도저히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으며 그것을 내어주지 않은 작가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겠다. 비로소 알겠다. 작가-를 포함한 모든 창작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답을 줄 수 없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 내가 책을 읽으며 끝없이 답을 갈구했던 것처럼 그들도 글을 쓰며 끝없이 답을 갈구했을 뿐이다.
내가 글을 읽으며 찾을 건 답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이다. 질문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확신으로 작가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의 어떤 부분에 의문을 가지고 들여다보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으며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나는 이제 질문을 찾을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