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배롱나무를 만났던 것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어느 고택에서였다. 꽃이나 나무에는 문외한이라 이름도 모른 체 그저 고즈넉한 양반집에 제법 운치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매화, 대나무, 국화, 난 같은 식물들을 가까이 두었다. 그 나무들은 절개나 욕심 없는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기에 선비들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모여서 완상 했다.
배롱나무에는 그렇게 선비와 연관되는 상징이 없다. 마치 촛대처럼 가지가 위로 뻗어 그 위에 붉은 꽃이 열리는, 소나무처럼 크지도, 수국처럼 화려하지도, 수선화처럼 물가에 피어나지도 않는 이 배롱나무가 나무와 돌로 만든 조선의 큰 집들에 조화롭게 어울리면 독특한 품위가 생긴다. 아파트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지에 처마가 있는 고택에 특히 비가 내릴때, 안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운치가 새삼스럽다. 배롱나무의 꽃을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꽃말이 수다스러움, 웅변, 꿈, 행복이라고 한다. 붉은 꽃들을 보고 수다스럽다고 느꼈던가? 아니면 행복이 오래가길 바랐던가? 사람의 마음이란 종잡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