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읽다.
마음 심心은 대상의 형태에서 자형을 가져온 상형문자이다. 心자는 심장의 모습을 본 따 글자를 만들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대의 사람들은 심장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 사람의 배를 갈라 그 안에서 심장을 꺼내어서 보았을까? 희생제에 사용된 동물의 심장을 보고 형태를 빌려왔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개념을 동물의 심장에서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마음 심자의 형태는 인간의 심장을 본땄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21세기는 바야흐로 뇌과학의 시대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심장이 했다고 믿어왔던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실제로는 뇌가 컨트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자극을 통해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뇌를 조절해서 행동을 조정하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평화, 성공, 부를 성취할 수 있다고도 한다.
상상해 본다. 왜 고대인들은 심장을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해부학적 지식이 없지만, 사람의 배를 가른 후에도 심장이 뛰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전신으로 피를 보내는, 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펌프의 그 움직임이 고대인들에게는 경이로워 보였을까? 마음이라는 것은 요동치고 뿜어내고 수축하고 움직여 비로소 기능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心의 뜻은 마음이지만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본질에 가깝다. 心은 쓰기가 간단한 편이지만 형태를 바꾸어 ‘忄’로 변이 되어 다른 글자와 합쳐져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여 파생되는 많은 행위를 의미하는 글자의 핵심적인 의미 부분을 담당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단어들이 그렇게 새로운 개념과 생명을 얻었다.
心자를 보고 있으면, 한자가 사용된 그 수많은 시간 속에 많은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해석과 의미부여, 견강부회를 단숨에 넘어 글자가 생겨난 강력한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문자의 발명은 문명 발전의 기본 요소이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는 문명의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의 심장의 모습을 본떠 마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로 한 고대인들의 사유가 과연 현대인의 그것보다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