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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Jul 30. 2024

단상_귄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인종과 성별, 종교, 국경, 시공을 초월한 그런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걸까? 미술사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으로 아름다움은 언제나 설명의 대상이다. 왜 그것은 가치가 있는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아름다운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직관적으로 그 아름다움의 본질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조차 지나온 길을 더듬어 설명할 말을 찾아야 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단어를 뒤져보지만 온전히 부합하는 단어를 찾는데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어는 있는데, 그 단어가 가진 뉘앙스의 감을 잡지 못해 단어를 쓰는데 망설여진다. 어쩌면 지금 느끼는  이 감각에는 이 단어야말로 딱 들어맞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예를 들면, ‘귄있다’와 같은 단어가 그중에 하나이다. 귄있다는 전라도 사투리로 매력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매력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외모, 심지어 귀티 나게 생겼다는 의미도 있는데, 확실히 보편적인 예쁨보다는 개성 있고 매력 있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매력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언젠간 누군가에게 이 단어를 꼭 써보고 싶은데, 귄있는 사람을 봤어도, 그 사람이 귄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어의 뉘앙스는 삶에서 비롯된다, 여러 사람의 삶이면 그것은 문화가 되고, 쌓이면 역사가 된다. 귄있다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꼭 맞는 그 순간, 사물이든, 작품이든 그리고 사람이든 귄있다라는 말을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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