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稿의 이해

문자를 읽다.

by 검은 산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제일 고민인 것은, 각기 다르겠지만 아마도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일 것이고,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쓴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 때 일 것이다. 글은 생물 같아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달려 나가는 야생마 탄 것처럼, 고삐를 단단히 잡지 않으면, 금세 절벽에 다다른다. 그 너머에 무엇이 보이든 더 달린다면 그 아래로의 추락은 불가피하다. 전부 다 버려야 한다.


그럴 때마다 고稿를 생각한다. 고는 볏짚, 혹은 초고라는 뜻을 가지고 뜻은 화禾에 소리는 고高에 얹은 형성자다. 하영삼 선생의 『한자어원사전』에는 '탈곡을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볏단을 의미하며 가공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초고草稿의 의미가 비롯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라카와 선생의 『상용자해』에서는 '볏짚이 말라서 광택이 나는 것을 고槀라고 한다. 초고, 갈겨쓴 것을 고稿라고 하는 것은, 초고를 조악한 종이에 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최근세까지 문자를 읽고, 특히 쓴다는 것은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고대에는 문자에 신성성까지 부여되었다. 그런 문자에 관련된 글자가 볏단에서 비롯되었다니 '그런가?' 싶다가도 쌓아 올린 볏단에서 탈곡해서 곡식을 얻어내려고 했다는 것에서, 초고는 거친 종이에 우선 써 내려가는 처음의 글이라는 점에서 '그런가?' 하고 납득을 하게 된다.


최초의 작은 단초로부터 일어나 쌓아 올려진 문자와 문장들을 반복해서 다듬어 나간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정말 거대한 볏단을 쳐서 밥이 될 쌀을 골라내는 작업과 비슷하기도 하다. 켜켜이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 남겨야 할 메시지를 남기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문자가 단어가 되고, 단어가 마침내 문장이 되면, 겨우 하나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최초에 일어난 생각들, 전하고 싶은 말들로 쌓아 올린 나의 문자를 버려도 아깝지 않을 조악한 거친 많은 종이에 급하게 옮겨 적은 후, 끊임없이 거둬내고, 골라내어 마침내 글이 된다는 것을 고稿가 의미한다면 그것은 현재에도 유효할 것이다. 글이 작은 단초라는 세포가 분열해서 고민과 숙고라는 단계를 거쳐 생물이 되어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비롯되는 인간과 존재가 살아내는 삶처럼 글이 그토록 역동적인 것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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