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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對의 이해

문자를 읽다

by 검은 산

서로 얘기를 많이 하면 친구, 부부, 직장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가 (무조건) 깊어진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을 겪으면 겪을수록 말보다는 행동이, 특히 일관된 행동이 사람 사이에 신뢰信賴를 공고히 하고 그것을 토대로 유대가 돈톡해 진다는 믿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또한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꼭 전해야 할 말들은 반드시 소리 내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예의라는 것을, 그리고 그 예의가 지켜지는 것이 참 드물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분명한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나의 뜻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에게는 슬픔과 기쁨이 다채로운 비율로 섞인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대화對話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 몇몇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대對라는 문자는『한자어원사전』에 따르면 '착丵(풀 무성한)+촌寸(마디)으로 구성된 글자로 올리다, 받들다는 뜻이 되었고 후에 대답하다라는 뜻이 더 강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용자해』에서는 '丵+土+寸이 합해진 글자로 丵은 굴착도구로 손에 쥐고 땅을 쳤고, 두 사람이 상대하여 흙을 치기 때문에 향하다, 대하다. 답하다'라는 뜻으로 쓴다'고 해석했다. 문자학은 여전히 해석과 고증의 영역이기에 상상력을 자극한다. 해석을 들어도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대라는 글자가 작용과 반응의 뜻을 담은 글자라는 것은 알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름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무시와 긴장이 담긴 이런 대응은 감정을 표출할 수는 있지만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유용하게 쓰이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상용자해』로 해석하자면 상대방의 리듬에 나를 맞추고, 나의 리듬에 상대방이 맞출 때 비로소 땅을 다지고, 성을 세울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 때 비로소 대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대라는 글자는 정말 'cool'한 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통화조차 부담으로 여긴다는 시절에, 누구나 핸드폰을 들고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 있는 이렇게 '소통'이 흔한 시대에, 우리는 누군가를 대對하여 제대로 응답했던 적이 있었던 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영원에 비하면 찰나를 살 뿐인 인간에게 생生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란 그저 타인과 온전히 대對했던 짧은 시간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타자외에도 대對하는 존재에 나 자신도 온전히 포함될 수 있다면, 찰나는 비로소 영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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