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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亂의 이해

문자를 읽다.

by 검은 산

일본 영화 황금기를 상징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무척이나 화려하다. <라쇼몽>(1950), <7인의 사무라이>(1954), <거미집의 성>(1957),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1958), <요짐보>(1961), <쓰바키 산주로>(1962), <붉은 수염>(1975), <카케무샤>(1980), <란>(1985), 모두 미학적으로도 재미로도 뛰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란乱>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프랑스의 자본을 지원받아 만든 그의 마지막 시대극으로 미후네 토시로와 함께 구로사와 감독의 페르소나인 나카다이 타츠야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는 흑백 영화의 시대에서도 컬러 영화의 시대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그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시대에 모두 거장이었다.

영화 <란>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그의 영화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원전을 재해석했다기보다는 고전이 담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해 공명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것이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원천이라고도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 시대극의 제목 <란亂>은 『한자어원사전』에서는 "두 손으로 엉킨 실을 푸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어지럽다 외에도 정리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으로도 쓰였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상용자해』에서도 해석은 대동소이하다.


영화 <란>, 혹은 넷플릭스 드라마 <전, 란>, 임진왜란, 병자호란처럼 란은 역사 속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힘과 힘이 충돌해서 생기는 사건을 일컫는다. 또한 '민란民亂'처럼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를 극도로 혼란에 빠뜨리는 중대한 재난에 붙이는 이름이기도 한다. 그런데 원래 문자가 비롯된 뜻은 그저 엉킨 실을 푸는 모습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마치 'butterfly effect'처럼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 에너지가 시대를 뒤흔드는 혼란으로 바뀌는 보이지 않는 이치를 고대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난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종식된다. 거대한 불길은 영원히 탈 수 없고, 모든 것이 타고난 그 잿더미 위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다. 그래서 난에는 다스린다, 정리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이 기막힌 이치를 보면서 새삼스레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에 나온 '희망'을 보듯 기쁜 것은 지나친 해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지럽기만 한 것도, 그저 고요하기만 한 것도 세상에 정해진 질서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가 드는 것은 행복도 찰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 또한 반드시 끝난 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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