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_독립운동, 안중근
오랜 세월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고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의사를 처형한 일본은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상징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겠지만 36년이 흐르면서 알고 있던 아주 소수조차도 사라졌으리라, 그의 유해는 조국이 아닌 저 어딘가에서 그렇게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있으리라. 안중근 의사는 육신조차 편히 누일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후,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만주로, 간도로 떠났다.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독립운동가가 엄동설한에 만주로 건너가 경험했던 일을 기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솜옷도 아닌 얇은 의복으로 간신히 몸을 가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끝없이 걸어 끝내 동지들과 합류할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의 다리가 퉁퉁 부어 마치 무같이, 보랏빛으로 변했다고 표현했다. 담담한 그 문장에서 고통보다는 의지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얼빈을 보고 건조하고 심심하다는 감상평도 있다는 것을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처했던 상황을 압도적인 시각적 스케일로 구현해 낸 그 장면장면들은 마치 그들과 조국에 밀어닥쳤던 어찌해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버티고 서서 한 걸음씩 간신히 앞으로 걸어가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뜻에 바친 그들을 감히 상상하게 해 주었다.
숨조자 쉬기 힘든 눈 덮인 겨울산에서의 처절한 전투, 사막을 가로지르는 그림자, 그 아래가 가늠되지 않는 두터운 얼음 위에서의 한 걸음, 앙상한 숲에서의 조우하는 장면들은 스스로에게 싹튼 의심, 동지의 죽음, 배신, 두려움,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운명 속에서의 결행, 그 어느 것도 간단치 않은 선택이자 고통이며 슬픔의 다른 표현처럼 보였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그 한가운데로 함께 하는 것만 같았다.
안중근 의사는 스스로 횃불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조선은 그로부터 35년 후에 광복을 얻었다. ‘조선이 독립이 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 우덕순이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이놈에 나라 망해라 망해라 했는데 진짜 망할 줄 알았냐’고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쌓인 울분으로 원망했을지라도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이토의 대사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시혜를 받는 노예로 살기보다는, 모순된 현실이라도 주체가 되어서야만 진짜 살아있는 것이라는 그 권리의
회복을 위해, 나만이 아닌 내 동지들, 가족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해, 이들은 삶을 뜻에 기꺼이 불쏘시개로 던진 것이리라. 그래서 하얼빈은 너무 춥고, 너무 스산하고, 그리고 너무 뜨거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