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위하여_파이란

by 검은 산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극복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잊는다고 하며, 또 슬픔을 건너간다고, 견딘다고도 한다. 모두 슬픔의 일부분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슬픔은 느끼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내면에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감정의 동요를 잘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의 순간에 화가 나있었고, 스위치가 눌리면 곧잘 그동안의 인간관계를 리셋시키는 방식으로 표출했다.


그때는 그 분노들이 정당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이미 화가 난 상태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분노로만은 마음과 머릿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아니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분노 안에는 아주 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고, 그것을 분리해서 걸맞은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리해 성공해 이름 붙인 수많은 감정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슬픔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뭐랄까? 몽글몽글 아련하고, 비눗방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끌거리며 쓴 맛인 나는 그런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나는 이 슬픔을 정말이지 간신히 분리해 냈는데, 손만 대면 톡 하고 터져버리는 슬픔을 손으로 받쳐 둥둥 띄워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돌이켜보건대 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영화 '파이란'이었다.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던 시절, 나는 이 영화를 친구와 영화관에서 봤다. 영화 보러는 주로 혼자 다녔지만, 왜 이 영화를 친구와 같이 보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조명이 꺼지고 어두운 그곳에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울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을 찍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에 가까운 그런 요란스러운 울음이었다. 눈에서 나오던 물이 배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런 느낌, 뜨겁고도 쓰라린 느낌을, 나는 그날부터 슬픔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그 후에 어느 순간부터 분노라고 생각해던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혹시 슬픔이 섞여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되었다.


파이란이 그만큼의 영화였는지, 아니면 그때가 마침 그래야만 했던 순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나는 영화가 아닌 나의 슬픔의 순간에 분노하지 않고, 뜨겁게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슬픔을 제대로 느껴야만, 충분한 눈물로 그 슬픔을 받아들여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