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_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도 서귀포시

by 검은 산

제주도는 흥미로운 땅이다. 대한민국의 도서島嶼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건너 땅을 딛고서 보이는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변화무쌍한 압도적인 질량의 바다와 생명의 원천처럼 섬을 지탱하는 한라산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광은 떠나와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휴양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서울에서 제일 먼 땅 제주도는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으며, 가까운 과거에도 4.3 사건같이 이념의 충돌 속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척박했던 땅을 사랑하고, 이곳의 상처를 함께 나누고, 또 한편으로 이곳에서 치유받은 예술가들도 많았다. 그중에 멀리는 추사 김정희가 있고, 가까이는 동백꽃의 작가 강요배가 있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길에 우연히 알게 된 김영갑 작가도 있었다. 김영갑 작가는 1982년부터 제주도 사진을 찍었는데, 버려진 폐교를 수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두모악이라고 하고 작품들을 전시했다. 층고가 낮은 건물 내부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계절 제주도의 풍광風光이 가로가 긴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그 풍경들은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제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다만 한낮에 오름을 오르며 어렴풋하게 느꼈던 제주의 진짜 모습, 쉬려고 오는 사람에게는 쉽게 보여 주지 않는, 바람과 돌의 땅 제주의 진면목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김영갑 작가의 주된 피사체는 제주도에서도 주로 한라산과 그 주변의 지대이다. 제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인데, 작가에게는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망망한 바다보다는 어떤 시간, 어떤 날씨에도 변치 않는 형태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땅이 더 마음에 닿았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발견한 제주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집요하게도 매달렸다.


작가는 루게릭병으로 2005년에 작고했다. 병을 알게 된 지 6년 만이었다. 갤러리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곳에는 점차로 생기가 잦아드는 작가의 모습도 함께 남겨져 있다. 작가의 삶을 비추듯이 작품들은 대부분, 마치 삶이 생生과 사死가 반반씩을 나누어 가진 것처럼 하늘과 땅으로 반반씩 나누어져 있다.


작가는 병명을 알게 되고 난 후, 여러 날을 절망에 빠져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두모악 갤러리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두모악에서 김영갑 작가가 남겨두고 간 사진들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가 살아서 견뎌낸 그 시간들을 감히 상상할 순 없지만, '우리는 어차피 모두 죽는다. 다만 그때가 언제 인지 알 수 없을 뿐'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다.


작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제주의 모습을 남겨두고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에서 무엇을 찾아낼지는 살아있는 관객들의 몫이다. 나는 김영갑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제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온전히 살아낸 생이 온전한 죽음으로서 삶을 완성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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