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 전시
식민지 시기를 지나온 한국인들에게 고향에 대한 개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왜곡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근대화와 식민지배가 뒤섞이면서 모던이 전통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방향성 속에서, 전통은 낡아 버려야 하는 것이고, 새로운 것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질 수 있도 없는 근사한 그 무엇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그려낼 방법론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수묵 화풍 또한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면 중국에서 들여온 화본의 복제의 복제의 복제쯤 되는 사경화의 껍데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을 양산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지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그래서 유화로 그래낸 고향을 그렸다고 하는 많은 풍경화들을 보면서 대부분 형식에 메여 실경이 주는 ‘진실‘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보기만 해서는 그 시대의 서양에서 유행하여 한국으로 유입된 사조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을 뿐 그 작가에게 과연 고향은 어떠한 의미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덕수궁을 가득 채운 그림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 너무 비슷하다.’ 유화로 그렸기에 다양한 컬러로 산과 하늘, 땅이 그렸지만 마치 흑백 사진을 보듯 모두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자체로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식민과 전쟁을 겪어냈던 우리에게 고향이란 그렇게 타자의 눈으로 본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것이야말로 ‘실향‘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짜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고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조국을 잃고, 고향을 잃음으로써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라고……어떤 작가에게 그것은 산 깊고, 물 맑은 그곳에 태양이 부딪쳐 으스러져 흩어지는 그 무엇이었겠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색면으로만 겨우 복원할 수 있는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작가에게는 붉은 태양의 흔적이 뇌리에 박혀 버려 다른 그 무엇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다만 ‘고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실존의 자각이라는 도달점까지 멀어 버린 눈으로 더듬어 가는 과정 그 자체는 아니었을지……
우리는 우리 자신 밖에 그릴 수 없다. 나의 경험, 기억, 그리고 우리가 공유한 문화와 역사 위에 이미지는 펼쳐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고향을 가졌는가? 그래서 잃었는가? 하지만 애초에 고향은 잃을 수도, 잊을 수 없는, ‘존재‘에게 필수불가결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빛을 회복한 지 80년, 덕수궁에서 ‘향수‘라는 명제 속에서, ‘고향‘이라는 실존에 대한 고민을 화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그리고 화가가 속해 있는 그 시대, 그 시간과 공간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