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 : 영혼의 기술>

서울시립미술관

by 검은 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영어로는 ‘museum’이라고 하며, 뮤즈에게 바쳐진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학문 연구, 철학 토론, 시 창작,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던 지적·예술적 성소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미술, 혹은 예술로 정의되는 작품과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그 정의가 ‘축소‘되었다고 한다면, 서울시립미술관의 <강령:영혼의 기술>은 옛날 그리스 시대, 영감의 여신에게 바쳐졌다고 하는 공간으로서의 뮤지엄에 보다 어울리는 그 무엇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이성적인, 증명할 수 없는,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해 , 혹은 영혼이라고 불리는 영감에 대해 이토록 넓게 펼쳐진 다양한 양태를 본 적이 있었는가? 이러한 경험들이 미술관을 다니면서 수많은 작품들 앞에 걸음을 멈추며 허리를 굽혔던 나에게도 있었던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전시였다. 특히 야간개장 시간에 방문했을 때는 적막한 미술관에 내려앉은 분위기도 공기도 완벽했다. 강렬한 색감의 전시장 벽의 컬러는 효율적으로 공간을 구획함은 물론 관람자로 하여금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집중을 유도했다. 또한 전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다던가. 난해 했다기보다는 영혼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과 시도, 그것과 얽힌 관람자들과의 상호작용이 오히려 중요했던 전시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윤형민 작가의 <블랙북>(슬라이드쇼)이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효자도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 작품으로, 슬라이드로 만들어진 영상에서는 위정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강제하는 ‘도덕‘이라고 불리는 강압적 질서를 세뇌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문자를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메시지가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타인이 써준 데로 읽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완전한 분리, 이미지와 메시지의 분리,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영혼과 육체의 분리 같기도 했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육체를 넘어서 영혼과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찰칵, 찰칵 돌아가는 슬라이드쇼는 이성의 경계를 넘어, 최면을 통해 자신 안에 본질적인 그 무엇인가를 실제로 만져본 것만 같은 감각을 일깨웠다.


이성이 만든 경계를 넘나들면, 진정한 자유를 찾아 헤맸던 존재들을 사람들은 영매, 마녀라고 부르기도 했겠고, 그들이 기꺼이 내맡겼던 그 에너지를 영혼이라고, 신이라고도 불렀다면, 영상, 기계, 그림, 도자기, 사진, 글로써 자신이 본 것을 형상화하고 드러낸 작가들도 그 범주에 들어갈 것이고, 그들의 작품 앞에 몰입하며, 함께 하고자 했던 모든 방문자들은 신을 부르는 굿판에 후원자였을 것이다. 조용하고도 숨 막힐 듯 밀도 높은 긴장을 자아내는 그 굿판에서 진정으로 그리고 기꺼이 몰입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전시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