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컷과 초상화

by 검은 산

번화가를 걷다보면 '사진네컷'처럼 사람들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는 여러가지 컨셉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다양한 소품들도 준비가 되어있다. 혼자서 또는 가족, 친구들과 사람들은 한것 웃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만들고서 행복한 순간들을 찍는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그늘은 부드러운 배경색과 필터가 밝고 평평하게 표현해주니, 나같은 나같지 않은 그런 모습이 찍혀 나온다. 그렇게 인생의 한 순간이 박제되어 남는다.


조선시대에도 얼굴을 남기는 일은 많았다. 사진은 없었으니, 왕의 모습을 남기는 어진御眞, 공을 세운 신하들의 모습을 담은 공신초상, 관복을 입은 사대부, 학창의를 입은 양반의 모습이 그려 남겨졌다. 19-20세기의 화가 채용신은 그 시절 새로 수입된 사진의 영향을 받아 보다 사진적인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는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닯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一毫不似 便時他人'라든지, '전신傳神'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호부사가 외면을 미화시키고 않고 핍진逼眞하게 그리는데 목숨을 거는 것이라면, 전신은 그 정신까지도 온전히 담아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초상화의 엄밀함은 정조의 총신 채제공의 사시斜視를 그대로 그리거나, 천연두를 앓아 피부에 패인 자국을 표현한다든지, 술이 좋아해 코가 빨개진 모습을 그대로 남긴다든지 하는 수백년 전 인물의 삶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에 이른다. 특히 보물 <이광사 초상>(보물 제 1486호)을 보면 70세의 이광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명문가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부터 역모로 몰려 평생을 유배지에서 보내다 죽는 그의 삶을 미리 알고 있지 못해도, 그의 눈매를 보면 그가 평생동안 겪었을 좌절, 슬픔이 담긴 피로감은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화공 앞에 서는 인물들의 마음도, 그리는 화공의 마음가짐도, 지금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마음과는 달랐을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역사가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자못 비장했겠으나, 지금 사람들은 이 순간의 나의 모습을 나의 감정을 남기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의문은 든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나를 찍은 사진이 나를 닮지 않아도 괜찮아 진 것일까? 본격적으로 포토샵을 쓰지 않아도 될만큼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필터를 이용해 우리는 왜 행복이나, 기쁨을 가공해서 표현하고 싶어진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걸까?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빛나는 젊음이 사라진 뒤에도, 얼굴에는 젊음을 대신하고도 남을 생생한 표정이 생겨나기도 하며, 한껏 웃고, 손가락으로 V를 그린다 해도, 필터가 지워버리는 반짝이는 눈빛 속에는 기쁨에 가려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진들이 예쁘기는 하지만 진짜 나는 아니라는 것을......그러나 왜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을 나라고 말하고 싶어하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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