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공원
TV를 보다 보면, 지금은 자본의 시대, 부자가 되는 것만이 꿈인 시대, 타고난 계급은 없지만 부의 다소多小로 계층이 규정되는 시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정의, 도덕, 상식 같은 것들은 기꺼이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 실감 난다. 산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는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불티나게 팔린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정의란 것은 고민할 만한 의제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회의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신사동 한가운데 위치한 도산공원을 거닐다 보면, 이 돈의 시대에 '의義'처럼 감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의 가격을 가늠하자면, 이곳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도산공원은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부인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안창호 선생님은 평생 독립운동의 헌신한 분으로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8년 세상을 떠났다. 도산공원은 안창호 선생의 독립 의지와 사상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공간이며, 그 정신이 매일 새로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산공원은 1973년 조성되었으며, 총면적이 9,067평(29,974㎡)이다. 그렇다면 신사동에 위치한 도산공원의 부동산적인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 땅에 빌딩을 세워 올리면 그 빌딩의 가격은 과연 얼마일까? 아마도 수천억은 되지 않을까? 가끔 이곳을 거닐면서 어떻게 강남 한가운데에 이 정도의 땅이 오직 기념을 위한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가롭게 거닐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산 선생의 타협 없는 치열한 삶이 후손에게 조국의 독립을 선물한 것 이외에도, 돈과 명예, 권력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동상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봄은 싱그럽고 풋풋해서, 여름은 시원해서, 가을은 온통 붉고 노랑이어서, 겨울은 사각거려서, 아름다운 이곳은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회사원들에게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신혼부부들의 근사한 한 컷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도산 선생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이 공간이 생긴 유래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안창호 선생님 또한 조국이 독립해서,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이렇게 부강해질 줄 알았을까? 조국의 독립이라는 정의를 실천한 삶이 이렇게 물리적으로 기념될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가끔은 세상이 정신없이 변해서, 이곳도 언젠가는 경제 논리로 사라져 버리고,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들어진 건물이 들어서는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러나 도산공원이 만들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조국의 독립에 대해서만큼은 흔들림 없었던 선생의 유언이자 예견을 생각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것, '의義'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동포들이 겪은 고통에 마음이 아플 뿐이오. 일본은 자기가 일으킨 전쟁으로 망할 것이오. 그러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참고, 힘을 모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