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초등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일기를 걷어, 담임 선생님이 읽어보고 코멘트를 써주거나, '참 잘했어요'가 새겨진 고무도장을 찍어주고는 했다. 저학년 때는 그림일기, 고학년이 되면 글로 써서 냈던 일기는 교육적 목적에서 시행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일기 쓰기가 정말 싫었다.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일기에 도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새로울 것이 없는 매일매일에서 특별히 기록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 어렵고 귀찮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정말 이도 저도 없을 때는 되지도 않는 시를 써서 내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한 정도 쓸 수 있는 치트키라 자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 담임선생은 일기 중에서 잘 썼다고 생각한 학생의 글을 골라 읽어주곤 했는데, 그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경쟁심이 생기기도 했고, 이런 점도 싫었던 것 같다. 일기를 평가하다니 뭔가가 어긋나 있다고 생각해서 그때는 그냥 적당히 대충 써서 내는 것으로 나름의 반항 아닌 반항을 했던 거 같다.
그러다가 이 일기 쓰기를 딱 한번, 선생님에게 내 억울한 기분을 전하는 메신저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교내에서 하는 그림 대회였는데, 그림에는 원래부터 소질이 없었고, 워낙 잘 그리는 학생들이 많아서 입상을 기대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갑자기 흥이 나고, 계획했던 것보다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열심히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시간이 다 되었다고 그리는 것을 중단시켰다. 담임 선생님이 재량으로 그림이 완성되는데 필요한 20여 분 정도는 더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결국 붓을 내려놓고 미완성인 체로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내내 미련이 남았고, 원망이 생겼다. 그래서 일기에 그날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썼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적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뜻밖에도 선생님은 나의 일기를 읽었다. 당연히 억지를 부린다고 질책하실 줄 알았는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 내에 그리는 것도 대회의 규정이다. 아쉽지만 다음번엔 잘 계획해서 시간 내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자... 정도의 코멘트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뭔가 마음속에 남아있던 찌꺼기 같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그 그림을 홀로 완성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니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그 후로도 일기 쓰는 것은 여전히 재미없는 일이었지만, 소통이 되었다는 것,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과 감정일지라도 거부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던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이 어른의 역할이고 교육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