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황제공덕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청에 항복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일설에는 제대로 예를 취하지 않았다 하여, 쿵쿵 소리가 나고, 이마에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고 하는데, 정사에는 예를 올렸다는 기록외에는 더 자세히 기록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이 일이 일국의 왕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며, 조선 건국이래 공고하게 유지되었던 세계관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조는, 새롭게 재편되어 가는 동아시아 질서를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고 생각한 광해군을 반정으로 끌어내리고 왕이 되었다. 인조는 정통성도 없고, 대명의리도 저버린 무도한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질서 정연한 세계를 꿈꿨지만,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그가 꿈꿨던 모든 이상은, 몰락해가는 명나라에게 고명(왕으로 인정받음)을 받기 위해 명에서 파견한 장수에게 매달리는 상황 속에서 동력을 잃었고, 명은 인조의 애타는 사정을 지렛대 삼아 조선을 수탈했다. 설상가상으로 반정의 분공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그는 또다시 도망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20여 년을 재위에 있었던 인조는 청으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9년 만에 돌아온 후,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자, 이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지목된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소현세자가 죽은 후, 며느리 강빈과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을 죽이는 일이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소현세자가 다스릴 조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 심양에서의 억류 생활을 9년이나 견뎌낸 그가 돌아온 지 두 달만에 죽었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이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영화 ‘올빼미’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인조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는 소경의 입을 막고자, 정전 앞에서 칼을 휘두르다가 넘어져 머리를 계단에 부딪친다. 구안와사로 일그러진 그의 이마가 깨져 피가 흘르고, 그 피는 눈을 가린다. 삼배구고두례 순간의 재현이다. 대신들을 물론이고, 내관과 궁녀들도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왕의 광기를 피해 도망치기에 바쁘다.
그의 쓸모는 삼배구고두례를 하는 순간 끝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조와 왕을 밀어 올렸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정권을 수년 더 연장시켰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 강빈이 소경이 가져온 증거를 가지고 진실을 밝히고자 인조를 찾아갔을 때, 살인을 사주한 인조와 실행한 소용 조씨, 어의 이형록이 강빈을 둘러싸고 다가가는 장면은 흡사 먹이를 사냥하는 짐승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실패한 왕이 껍데기만 남은 왕좌를 지키고자, 아들을 죽여 마침내 짐승이 된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왕이 죽자 대신들은 그에게 어질 인仁자를 써서 묘호를 올렸다. 이를 보면,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전쟁으로 죽고, 끌려가서 죽고, 무고한 약자들이 희생된 이 시대를 만든 것은 인조와 그를 둘러싼 사대부들의 암묵적인 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영화 올빼미를 보고 나니, 삼전도비가 생각났다. 청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확립되었음을 증명하는 기념물을 세우기 원했고, 그것이 소위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이다. 대신들은 이 비를 짓고 쓰는 것이 개인적인 치욕이 될 것을 알기에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결국 청의 사신이 대노하여, 겁박하자, 인조가 이경석을 달래 문장을 짓게 하고 오준이 써서, 비석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경석은 도망친 다른 대신들 대신 이 멍에를 짊어졌다. 후에 대명의리와 북벌을 주창했던 송시열은 ‘수이강壽而康’이라고 하며, 이경석을 모독했다.
세상은 한낮에 거리에서 명분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울린다. 이 영화를 보면, 세상을 진짜 변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해준 세자의 억울한 죽음에 눈감을 수 없고,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외면하지 못해, 자신과 자신만을 기다리는 아픈 동생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밤을 내달리는 ‘소경’ 같은 이들이 가진 어진 마음, 인仁한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