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식_영광풍경도靈光風景圖, 1915
이건희컬렉션 전시가 전국을 돌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평일에도 예약이 힘들다. 문득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없는 리움은 존재감이 예전만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리움에 갔다.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관람객들로 기획전은 물론이고 상설전시장까지 붐볐다.
그 특유의 나선형 계산을 중심으로 회랑으로 구축된 그 건축물 안에는 찬탄이 흘러나오는 귀중한 유물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유물 사진을 찍고, 유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번에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작품은 안중식의 <영광풍경도>(1915)였다.
이 그림을 그린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은 조선 왕실에서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원화가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1881년 신식 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領選使)의 제도사(製圖士, 기술적인 도면 및 지도를 제작하고 인쇄판에 도면 및 화도를 복사하는 전문가)로서 참여하기도 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조석진과 함께 서화미술원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아직 한국 근대 미술사는 연구할 것이 많지만, 그 어느 연구도 안중식을 빼고는 기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1919년이 다하기 전에 가기 전에 숨을 거뒀다.
'안중식은 1915년에 전라남도의 부호인 조희경(曺喜璟)과 조희양(曺喜陽) 형제의 요청으로 체류했을 때, <영광풍경도>을 그렸다. 이 그림은 체화정(棣花亭)에서 바라본 영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처음에는 그림에서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그다음에는 전통과 근대의 화법이 묘한 불협화음을 내며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마지막에는 그 불협화음이 만들어 내는 생경한 풍경이 안중식의 눈에 비친 1915년의 조선의 풍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뭉클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심전은 조선의 마지막 화원화가라고 불린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전업화가로 활동하며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다. 그의 명성이 높았던 만큼 그림을 청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안중식의 남겨진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영광풍경도>와 같은 대작도 나올 수 있었다.
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 가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러나 같은 해, 1915년에 그린 <백악춘효>는 실경이지만 실경이 아니다. 이때의 조선의 정궁, 경복궁은 일제가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전각들을 훼철(毁撤, 부수어 치워 버리는 것)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고, 유락시설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그래서, 그리는 시점에서는 실경일 수가 없다.
1915년 <영광풍경>을 그린 사람도, <백악춘효>를 그린 사람도 안중식이다. 경술국치 이후, 그의 삶은 거대한 변화에 적응에 나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지탱되고 있었던 것일까?! 부호의 요청으로 그림을 그린 심전과 1915년의 경복궁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경복궁의 그린 심전은 같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었을까? <백악춘효>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이 <영광풍경>에서는 보인다. 어쩌면 <백악춘효>의 심전이 비롯된 곳에서 형성된 정체성이었다면, <영광풍경>을 그린 안중식은 강제적으로 시작된 근대에 존재한 분열된 인간 안중식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