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ist_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2008년 발매

by 검은 산

지금은 음원이라고 부르지만, 과거에는 곡이라고 부르고, 여러 개 곡들이 모여 앨범이 되고, 앨범에 곡들은 일관된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앨범이 내러티브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앨범을 출시하기 위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곡을 끼워 넣는 일도 많았다. 오히려 앨범의 모든 곡이 일관된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간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이들이 바로 언니네 이발관이다. 포르노 영화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밴드는, 이름과 재미있는 결성 배경만큼이나 긴 시간 동안 여러 장의 훌륭한 앨범들을 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앨범은 '가장 보통의 존재'(2008)이다. 앨범과 동명의 곡인 '가장 보통의 존재'부터 '산들산들'까지 10곡은 한 곡 한 곡 모두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추운 겨울밤에 혼자 걸어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앨범을 들으면서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러나, 사실 여름에도 잘 어울린다.


밴드의 리더인 이석원은 여러 편의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와 허구를 섞어놓은 그의 글을 읽어보면, 가사에 담겨 있는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된다. 그의 에세이든, 곡의 가사든 사랑 앞에 왜소해지는 작고 소소한 존재를 그려내는 솜씨가 담백하고도 씁쓸하다. 사랑이 달아야, 씁쓸함도 견딜 수 있기에 사랑은 그렇게나 달콤한 것인가? 사랑의 달콤한 보다는 씁쓸함에 더 눈길을 주는 곡들은 신기하게도 존재의 소소함을 느끼는데에 이르게 해준다. 그렇게 하나의 내러티브가 완성된다.


노래를 듣다 보면, 사랑은 그토록 아름답고도 숭고하고 완벽하고 너무 달콤한데, 그것을 하는 우리들의 존재는 왜 이토록 미미하고, 쓸쓸한 것인지, 남겨질 수밖에 없는지,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들이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나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좋은 것 같다. 뜨거운 사랑이 끝나고 쓸쓸함이 밀려올 때, 가장 보통의 존재인 우리들이 받아야 마땅한 위로를 이 앨범이 해준다. 그래서 이 앨범이 좋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네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겐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이곳에서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 보았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 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

그동안 길따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채.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게.

나에게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언제였나 너는 영원히 꿈속으로 떠나버렸지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작가의 이전글낯섦_근대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