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권이철, 오오세 루미코, ‘경성의 아파트’, 청암총서, 2021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주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재산 증식의 도구이며, 신문에는 종종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일반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올 만큼,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기도 한다. 아파트는 그렇게 욕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 욕망의 근원인 아파트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이 책은 경성에 아파트가 처음 등장했던 1930년 -1940년대의 풍경을 4명의 저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서술해 나간다. 아파트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를 조망하기도 하고, 일제강점기를 아파트를 통해서 바라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아파트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책에 의하면, 그 시절의 아파트는 독신자 숙소에 가까웠다. 팽창하는 경성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주거를 해결할 대안임과 동시에 개화된 경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아파트도 다양한 종류가 있어, 사는 사람들도 다양했다. 책에서는 신문기사, 골프클럽 회원명부, 전화번호부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서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과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읽어내는지는 독자의 몫이다.
책에는 풍부한 도판이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특히 현장 답사 사진들은 아직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의 건물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사진들을 보니 그 건물이 견뎌온 시간들과 더불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939년 가을의 경성은 불균형이 빚어내는 카오스로 혼란스러웠다. 지나친 현란함과 지나친 어둠, 지나친 가벼움과 지나친 무거움, 그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수탈과 악행과 치욕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소비 유흥 문화에 빠져들었다. 백화점, 다방, 술집, 영화, 유성기…, 노면 전찻길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식민지의 욕망은 어지러이 흘러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자본가와 노동자, 그들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p.024
"1930년대 신문에서 '명랑'이 가장 많이 사용된 사례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설명하고 보도하는 기사였다. '명랑'을 표방하는 총독부의 정책은 배제와 증진이라는 양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부랑자, 오물, 질병, 미신, 범죄처럼 근대적 생활과 도시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명랑성'을 감소시키는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면 위생설비, 전등, 치안, 범죄 예방 및 범법자 검거, 건전 오락 등 생활환경을 근대화하고 체제 안전에 기여하는 요소들을 '명랑성'을 증진시키는 대상으로 '명랑'의 의미장을 확장했다." p. 334
"일제식민지였던 조선의 한복판 '경성의 아파트'역시 1930년대 '착란의 교향악'에 동원된 또 하나의 도구이자 기념비적 구조물로써 '도시 거주자들에게 문화적 우위와 정치적, 종교적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거, 근대성과 진보를 물질적으로 재현한 것으로서 주변의 원주민 도시와는 다른, 새롭고 근대적인 생활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 p.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