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의 손

미술사 이야기

by 검은 산

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체성正體性 -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identity - the distinct personality of an individual regarded as a persisting entity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존재는 무엇이고, 본질은 무엇일까? 특성은? 영어 정의에도 비슷한 질문이 생긴다. personality는 뭐고 persisting entity 또 뭐라고 규정되어 있을까? 이렇게 계속 찾아가다 보면 십중팔구는 원래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를 보면, 정체성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독일에서 태어난 천재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다. 그중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가장 유명한 자화상은 마치 성화聖畫를 연상시킨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고요한 얼굴과 옷 깃을 여민 섬세한 손은 뒤러의 의도 아래에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뒤러는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화가가 되었다. 유럽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혔고, 재능과 경험을 토대로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성서를 주제로 한 도상을 판화로 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부와 명성을 모두 살아생전에 얻은 인물이었다. 뒤러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수의 이미지를 채용하는 한편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바라보는 눈 사이 중앙 하단에 손을 배치한 이 ‘자화상’은, 그가 생각한 자신인 한편으로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봐 줬으면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이 예술가는 예술분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영향은 역사의 전환과 맞물려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능력을 체감하면서 그의 자기 효능감이 얼마나 고양되었을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는 기술자에 불과하던 화공을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메시아인 예수를 닮은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내면서 한편으로는 옷깃을 여민 손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뒤러는 이 자화상을 1500년에 그렸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이 자화상은 <요한계시록의 네 기수>(1498)와 <아담과 이브>(1507), <기사, 죽음, 악마>(1513), <네 사도>(1526) 사이에 제작했다. <요한계시록의 네 기수>는 성서 요한계시록을 주제로 그린 작품으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뒤러는 자신의 후반생을 창조와 영광으로 채워나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뒤러는 이렇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까? 아니면 그렇게 되겠다고 결심했던 걸까?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확신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확신을 사람들이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뒤러의 자화상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 자기 중독이나 오만인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확신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자의 자신감, 자신이 아는 자신을 긍정하는 그 과정을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름, 성별, 재산, 국적, 규정 지워진 모든 것들을 떠나,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믿는 것, 나는 이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결국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근간이라는 것을 뒤러의 그림을 보면서 하게 된다. 그 믿음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 정체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충분치 않다고 느껴진다.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특성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고통과 기쁨 속에서 깨달으면서 얻는 것이 자기 부정과 자기 연민이 아니라면 우리는 좀 더 자신의 본질에 더 다가가고, 그 본질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뒤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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