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별호가 있었다. 보통은 사는 곳이나, 경전의 구절 등에서 가져와서 지었다. 한 개만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추사의 경우에는 수백 개를 지어 느낌 가는 데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왕에게도 호가 있었을까? 정조의 호는 홍재弘齋였다. 그것 말고도 정조가 자주 쓰던 호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에 만년에 썼던 자호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뜻은 만개의 시내에 밝게 빛나는 달의 주인으로 왕의 자호로서 이보다 더 직관적인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호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오른 정조가 재위 20여 년이 넘아가는 1798년에 지어 사용한 것으로 수원에 화성을 짓고 조선의 미래를 그리는 왕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기르고 강토를 지키는 자이다. 왕실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왕이 되는 것도 아니며, 장자로 태어났다고 해도 무조건 왕이 되지도 않는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다 해도, 자신의 의지를 전부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왕들이 독살당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병들어 죽기도 하며, 역모로 폐위되기도 한다. 아니면 아주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외척의 꼭두각시로 단지 존재하기만 할 뿐인 경우도 있다. 어쩌면 왕이 되는 사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왕위라는 그 위치가 확고한 권위를 가질 뿐,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왕위에 오르는 자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오르는 자의 뒤편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배치된다. 보통은 병풍으로 제작되어, 정사를 의논하는 정전, 어좌 뒤편에 펼쳐진다. 한 화면에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파도, 바위, 소나무 등이 진한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닌 의례를 위해 도식화되어 지극히 평면적이지만, 매우 두텁게 색이 칠해져 오히려 무겁게 느껴지며, 그 무거움은 장엄한 위엄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그림은 강산의 주인인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장치이며, 신하들이 섬기는 자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천명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항시적으로 각인시키는 일종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다. 어디에서 연원 하는 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음양오행설에서, 어떤 학자는 도가사상에서, 어떤 이는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천보天保’라는 시를 도해한 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고, 모두 틀린 해석일 수 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왕의 권위를 시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에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월오봉도는 흉례에도 사용되었다. 왕으로 태어난 자는 없지만, 왕으로 죽은 자에게 일월오병도는 그렇게 왕의 상징으로 오래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일월오봉도도 다른 궁중장식화와 마찬가지로 민간에 전해져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제작되고 유통되었다. 왕으로 살았던 적도 없고, 왕으로 죽지도 않은 사람들이 일월오봉도로 집안을 장식했다.
이같은 흐름을 멀리서 보면, 만개의 시내에 밝게 빛나는 달과 같은 왕의 권위와 힘이 형해화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해와 달, 산과 바다, 바위와 소나무 등이 모두 한 공간에 있는 세상이 부서지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제각각 만들어지는 그 일월오병도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아, 사람들은 그 새로운 일월오병도에 왕의 권위 외에 무엇이 담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지, 국립고궁박물관(https://www.gogu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