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When you begin a journey of revenge, start by digging two graves: one for your enemy, and one for yourself.
복수를 시작하려거든 무덤 두 개를 파 놓고 시작하라. 하나는 적을 위해, 하나는 나를 위해.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왜 제목이 글로리일까 궁금했었다. 복수가 본격화되는 파트 2에서 주여정의 입을 빌어 복수를 통해 피해자가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유일한 2가지가 명예와 영광이라고 한 대사에서 비로소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명예와 영광’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자존과 존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강현남이 연진의 엄마와 그 뒤를 봐주는 경찰의 뒤를 밟다가 문득, 붉게 타오르는 노을에 시선을 빼앗겨 ‘미쳤네’라고 나직이 탄식했던 부분이었다.
현남은 매 맞는 여자이다. 그녀는 동은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와 거래를 한다. 동은의 복수를 돕는 대신 자신과 어린 딸을 때리는 남편을 죽여달라고. 그녀는 자신보다는 딸을 위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벚꽃 흩날리는 칠흑 같은 밤에, 그보다 더 검은 동은과 계약을 맺었다. 현남의 입장에서 보자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래나 다름없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그 거래를 먼저 제안한다. 피폐한 삶에 짓눌린 영혼 속에 한줄기 명랑함, 용기가 그녀를 구원하는 순간이었다.
현남은 운전을 배우고, ‘딸깍’ 사진 찍는 기술을 익힌다. 변장을 하고 미행을 하며, 핸드폰을 바꿔치기도 한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민활하게 판단하며, 직관적으로 나아간다. 반지하에 살던 그녀가,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저녁만이 허락된 그녀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면서 자신의 자존이 회복되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에 흘러나오던 그 탄식은, 그래서 고통과 절망 속에 허덕였던 자신을 애도하는 나지막한 노래처럼도 들렸다.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자존이라고 한다면, 자존을 빼앗긴 삶은 가짜라는 것을 직면할 용기, 권력과 폭력으로 자존을 파괴하고 빼앗아 간 자들과 기꺼이 싸우겠다는 의지,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비장함은 존엄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그것을 빼앗기고는 동은이 19살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도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까? 현남은 두 개의 무덤을 파고, 복수의 여정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과 가장 사랑하는 딸을 지켰지만, 딸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현남은 후회했을까? 새롭게 시작되는 복수에 또다시 조력자가 된 그녀는 빨간 립스틱을 다시 바른다. 립스틱의 빨강은 노을을 닮았다. 밤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명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