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에 빗소리

by 검은 산

이유 모를 불안이 엄습하는 밤, 몸은 피곤하지만 쉽게 잠들 수 없는 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밤, 온갖 기억들이 어디선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밤, 작은 소리가 신경을 파고드는 그런 밤에는 잠드는 일이 고통이 된다.


걱정인지, 미련인지, 후회인지 모를 감정들이 카페인처럼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도 그것들에 사로잡혀 뒤척거리며 누워있어도 피로감이 더 진하게 엄습하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수다를 떠는 팟캐스트를 작게 틀어놓거나, 유튜브에서 빗소리 asmr를 찾아 듣는다. 불면 때문에 지독히도 괴로울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다가 찾은 수많은 수면 유도 영상 중에서도 나는 텐트를 두들리는 세찬 빗소리에 가장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그 빗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100%는 아니더라도 매우 높은 확률로 어느샌가 잠이 들어 아침에 깬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이렇게 특정한 주파수의 사운드를 백색소음이라고 하는데 파도소리, 바람소리나 카페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여기에 해당되고, 빗소리는 예쁘게도 '분홍색 소음'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 분홍색 소음, 핑크 노이즈에는 심장 박동 소리도 포함된다고 한다.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 있으면 잠이 잘 오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태고에, 문자가 없던 시대, 음식을 찾아 헤매던 부족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쉴 수 있는 동굴을 발견하고 겨우 휴식을 청할 때, 때마침 바깥에서 비가 세차게 내리면, 오늘 하루를 안온하게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던 그 DNA가 유전자 어딘가에 있어서, 그런 소음들을 통해, 너무도 복잡해진 현대 사회 한가운데 떨어져 벌벌 떨고 있는 인류를 단숨에 그 과거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 같다고…….

최우람, 작은 방주, 2022


갑자기, 그 불면의 밤들에 들었던 빗소리가 생각이 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우람의 <작은 방주>라는 작품을 본 뒤였다. 인간이 만든 기계이지만, 기계의 움직임과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사운드가 빗소리에서 통해 느꼈던 의식이 소멸되는 순간, 잠이 들든, 아니면 비대해진 자아에서 놓여나 본질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 느낌이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깨어있는 게 분명한데도 잠을 자는 듯, 작품을 보고 있으니, 불필요한 생각들에서 비롯되는 피로가 가시는 거 같았다. 빗소리를 통해서, 또는 예술품을 통해서 그렇게 자의식이라는 짐을 내려놓는 이 순간을 휴식이라고도 몰입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안온한 휴식을 꿈꾸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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