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예羿
중국 신화에 '예羿'라는 인물이 있다. '예'는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신궁으로 천상인이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아들인 열 개의 태양이 약속을 어기고 한꺼번에 지상에 떠 있자, 인간의 땅은 뜨겁게 끓어올랐고, 백성의 고통을 보다 못한 요임금이 하늘에 빌어 '예'가 지상에 내려왔다. 그는 화살통에 있는 화살의 숫자만큼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인간 세상의 평화를 가져왔다.
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인간을 괴롭히는 괴수들을 차례로 제거했으나 그의 영웅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상제의 아들을 쏘아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내 항아姮娥와 함께 지상에 유배되었다. 천상으로 돌아가길 너무도 열망했던 항아는 남편을 속이고 홀로 달로 돌아갔지만 역시나 저주를 받았고, 아내에게 배반당한 '예'는 지상에 갇혀 제자에게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머리를 맞고 죽었다.
빛은 양, 어둠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그리고 태양은 양, 달은 음으로 나눈다. 이 음양의 이치는 동양의 사상에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음과 양, 양과 음은 일견 분리된 두 개의 상반된 에너지 같지만, 상이한 성질의 에너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순환하며 우주의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예'는 어찌 보면 세상의 균형을 맞춘 존재이지만, 상제에게도, 인간에게도, 아내에게도, 제자에게도 배신을 당했다. 그의 삶을 보자면 보답받지 못한 비참한 삶정도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왜 신화는 이토록 '예'에게 잔인했던 것일까? 마치 모세처럼, 사람들을 구원하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새로운 세계의 일부는 될 수 없는 것이 앞선 자, 남들은 갖지 못한 특별한 힘을 가진 자, 혹은 세상의 고통에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자의 숙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침 출근길에 떠있는 달을 보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를 제물 삼아 지금 여기도 도달해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 비참한 결과에도 결국 활을 들어 태양을 쏘아 떨어뜨릴 또 다른 '예'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