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을 좋아한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면발과 짭짤하고 시원한 국물, 특히 어묵이 들어간 뜨근한 우동을 한 그릇을 비우면 온몸이 노곤노곤해지면서 마음과 몸이 충전되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우동이라고 하면 따지지 않고 일본식 우동, 휴게소에 파는 우동, 분식점에서 파는 것도 모두 좋아한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동을 좋아했던 걸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동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우동 한 그릇>이라는 단편 소설에 나오는 1과 1/2인분 같은 1인 분의 우동이다. 책에는 삽화가 실려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는 세 모자의 모습이 몹시도 배부르고 따뜻하게 보였다.
우동은 확실히 몸에 좋은 음식은 아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 떡볶이처럼,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기준과는 상관없이 그 순간 반짝일지라도 생의 의지를 북돋는,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더 유예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자 핑계가 되는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인 것 같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먹고 싶고 냄새도 맡기 싫어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전혀 먹지 않으며, 과거에는 쳐다보기도 싫어했지만 이제는 가끔 생각나서 혼자라도 먹는 일이 생기는 것처럼, 과거에는 무엇을 먹었고, 지금은 무엇을 먹는지는 삶의 경험들과 그것에 대처한 나의 감정과 판단, 그리고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져 나가는 것 같다.
주문한 우동이 내 앞에 오면 모락모락 김이 난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무심한 듯 배치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한다. 나는 이미 이 맛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다 먹고 나갈 때는 든든해진 기분과 복잡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몹시도 단순해져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을 알고 있다. 이 익숙한 경험, 틀린 적이 별로 없는 아주 높은 확률로 성공할 것이 분명한 우동을 먹는다는 행위는 그래서 어느덧 삶에서 꽤나 소소하지만 꽤나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