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과 데모크라시

by 검은 산


아주 먼 옛날에는 인신공양이라는 것이 있었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 이야기가 나오며,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너무도 유명하다. 좀 다른 이야기로, 공자는 순장이 불인不仁하다고 했지만,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죽여 묻는 순장殉葬은 청나라 때까지도 이어져 황제가 죽으면 비빈들을 죽여 함께 묻었다. 한반도에도 인신공양이나 순장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신공양은 인간의 목숨을 신을 위로하는 제물로 사용하고, 순장은 목숨에 차등을 두어 하나의 죽음을 위로하고, 사후세계에서조차 그들을 섬기도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불에 태우거나 흙속에 파묻어 버리는 일이었으나 장엄한 의식으로 치장하여 몇 천 년을 이어졌다. 인간 목숨의 가치가 우연히 얻은 혈통에 의지했던 이 오랜 시간을 우리는 과거라고도 혹은 역사라고도 부른다.


죽임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 왕, 귀족, 제사장들은 그런 가문에서 태어나 대대손손 그 지위를 유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하늘이 주신 운명[天命]이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왕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신이나 하늘이 있어 이런 불평등을 부여했다고 믿기를 거부하고, 아니 정말 하늘天이 있어 이런 불합리를 만들었다면 그 하늘조차 버릴 각오로 싸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수였으나, 이들의 수는 곧 불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왕의 무덤이 아닌, 인권, 민주주의, 평등, 자유, 존엄이라는 이름의 나무에 풍성한 과실이 열리기를 간절히 원한 나머지 스스로 거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들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거센 바람이 불고, 번개가 쳐서 나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 어디선가 또 누군가가 나타나 그 나무에 자신을 바쳤다.


길을 걷다가 보면, 캐슬, 노블, 힐, 아너, 프레스티지, 궁 등등의 단어들로 치장된 건물이나 공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은 왕과 백성, 노비들이 살았던 시대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름이 붙은 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공간, (자본주의의)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규정되기를 바라며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 평등, 자유, 인권, 존엄, 정의 이런 단어들이 노블, 아너 같은 단어보다 더 럭셔리해 보인다. 왜냐면 그 단어들이 세상에 회자되기까지, 온전하지 않을지라도 그런 것이 있고 마땅히 인간이라면 모두가 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기까지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 또한 과거이고 역사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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