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사낭꾼_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 2022

by 검은 산

사랑에 서툰 사람을 놀릴 때, 연애를 글로 배웠냐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랑이 진실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쩌면 고지식하게 고군분투하는 사랑이야 말로 순도는 그 무엇보다 높을지도 모르겠다.


조선 사람들은 천주교를 글로 배웠다. 중국을 왕래하던 사대부들이 서양의 새로운 지식에 호기심을 느껴 그들이 지은 책을 보던 중에, 하느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아무도 가르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영혼 깊은 곳에 믿음의 뿌리를 내렸다. 이는 전 세계 교회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승훈이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래(1784), 정치적, 사상적인 이유로 천주교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천주교가 그저 불교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며 이론적으로 배척하고자 했고, 권력자들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빌미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무자비한 탄압에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 배교를 강요받고, 고문을 받고, 그리고 죽임을 당했다.


탄압이 지속되자, 호기심으로, 지적인 욕망으로 믿었던 대부분의 양반들은 이탈해 나갔지만 중인, 천민, 노비 그리고 여인들은 조선 천주교를 떠받드는 반석이 되어 기꺼이 믿음을 증거 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추앙하고 그리고 기억하고 있다.


18세기는 조선시대 최고의 전성기이다.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도처 도사리고 있었다. 신분제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다양한 욕구들을 분출할 수 있는 장은 억압되어 있었고, 부는 확대되었지만, 빈부의 차이도 커지고 있었다. 18세기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도 어렵지만, 이 책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는 조선의 18세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으로,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본인도 전체 모양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신 연구성과까지를 반영하여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여 완성한 책이다. 때문에 다소 중복되거나, 18세기 후반의 전체적인 모습을 멀리서 조망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나, 장장 9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는 천주교를 둘러싼 조선의 18세기 후반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정약용을 비롯하여, 18세기 조선의 지식인으로만 생각했던 이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들을 보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이 이들의 운명을 갈랐는지를 감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책 뒤편에 <정감록>과 관련된 부분은 여인, 천민, 노비, 중인 등 조선 사회에서 절대로 주류가 될 수 없던 이들이 왜 천주교의 가르침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너무도 가슴 아프고 슬프기조차 하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역사에 있어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황사영에 대해 그동안 갖고 있었던 의문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글이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다.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조선 후기의 진정한 일면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서양교(천주교)에 명도회明道會가 있습니다. 혹 3-4인, 혹 5-6인이 하나의 회가 되어, 먼저 이름을 신부에게 보고하고, 그 뒤에 신공을 합니다. 신공은 서양학을 살펴 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1년 내에 신공이 부지런한 자는 회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부지런하지 않은 자를 뽑아냅니다. p.561


숙종조 이래로 조선을 강타했던 <정감록> 신앙은 거의 재림 예수 신앙의 조선 버전에 가까웠다. 십승지를 찾고, 미륵 세상을 꿈꾸며, 도화낙원을 갈망하던 이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은 그들이 바로 그 복음의 소리였다. 이런 꿈은 19세기 전 세계를 떠돌던 메시아니즘의 변용이었을 뿐이다. p.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