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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진 Dec 02. 2021

돌밥에 돌겠다

어느 새끼가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고 정했단 말인가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을 부르며 해골을 그리던 그 시절에는 몰랐다. 아침 먹고 땡이 아니라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점심을 차려야 한다는 사실을.  

 한 끼를 먹기 위해 있는 반찬에 밥만 올려 먹는다고 해도 차리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갓 한 반찬과 찌개라도 하나 추가하려 치면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데만도 한 시간이다. 그럴 때면 한 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기까지 두 시간은 기본이다. 하루는 24시간이니 건강을 위해 8시간을 잔다고 치면 남는 시간은 16시간이다. 하루 세 번, 16시간 안에서 세 끼가 반복되니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 된다. 일명 돌밥.

 어느 새끼가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고 정했단 말인가. 다섯 끼가 아님을 감사하며 세 끼를 차려야 하는가. 보릿고개를 넘던 그 옛날 시절에는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었다던데,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고인돌 시절에는 며칠 동안 굶을 것을 대비해서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었다던데. 도대체 이 하루 세 끼는 언제부터 정해진 규칙이기에 미국도, 일본도, 유럽도, 남미도, 우리나라도 모두 세 끼를 먹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현대 사회의 훌륭한 제도라고 할 수 있는 배달의 힘을 빌린다. 전문적인 말로 아웃소싱이라고나 할까.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온 가족이 평화롭다. 매일 직업으로 요리하는 주방장의 요리 솜씨를 어느 평범한 주부가 따라갈 겨를이 없다. 게다가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차려준 음식이라고. 주부가 행복하니 집안이 평화로운 건 당연지사다.

 요즘에는 배달 안 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메뉴도 다양하다. 짜장, 피자, 치킨으로만 대변되던 배달음식이 이제는 한·중·일을 뛰어넘어 양식에서 야식, 아랍, 멕시코 등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메뉴들까지 어느 식당으로 갈지 고르는 것만큼이나 ‘오늘은 무엇을 시켜 먹을까?’하는 선택의 기쁨 앞에 놓인다.      

 그런데 연거푸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나면 한 아이의 엄마로서 죄책감이 슬며시 올라온다. 모든 배달 음식에 MSG를 넣은 것도 아닐 텐데 조미료 가득한 음식만 먹이는 것 같고, 아이가 환경호르몬에 과다노출이 된 것 같아 괜스레 불안해진다.     

 ‘그래! 내 아들도 엄마 밥맛이 뭔지는 알 수 있게 키워야지!’      

 드라마나 광고에서 풍길 법한 ‘크고 나니 엄마 음식이 제일 그립더라’는 슬로건에 반해 우리 아이에게서 ‘난 엄마 음식 맛이 기억 안 나는데?’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유기농으로 근사하게 차려주지는 못할지언정 집밥의 정서는 심어줘야 한다는 다짐. 

 그렇게 하루 세 번 며칠을 요리하고, 메뉴 돌려막기도 떨어질 때쯤 더 이상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온다. 분명 요리책은 두툼하게 한 권이나 될 만큼 메뉴가 다양한데 요리를 하다 보면 그 음식이 그 음식 같다. 

 시금치된장국, 유부된장국, 배추된장국, 소고기된장국은 ‘오! 이런 된장국도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하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베이스가 같은 된장국에 건더기가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냥 똑같은 된장국이다.

 그나마 정성 들여 국이라도 끓인 날이건만 식탁 위에는 밥 하나 땡, 국 하나 땡이다. 분명 한 시간 동안 재료를 다듬고 끓였건만 먹는 사람 눈에는 빈약한 밥상일 뿐이다. 왜 우리나라는 칠첩반상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오늘날의 나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가. 외국처럼 스파게티면 스파게티, 스테이크면 스테이크 한 가지 요리로 끝낼 수는 없는가. 

 국에 밥이면 후루룩 넘어가겠건만 남편은 기어이 자기가 반찬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고맙기도 하지만,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내심 미안해진다. 나는 똑같은 걸 계속해서 요리할 수 있는데 먹는 사람이 지겨워서 못 먹겠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그러고 보면 인생은 고행 같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생존을 위한 일이 때론 족쇄가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인간의 입맛은 왜 그리 까다로워서 매번 새로운 것을 먹고 싶어 하니 먹고 사는 일이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왜 그다지도 밥해 먹는 게 낭만적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살라고만 하면 영화처럼 밥 해 먹는 일이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밥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돈도 벌고 그 와중에 틈틈이 자기계발도 해야 하는데 미래를 위한 일보다 생존을 위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진다. 

 매일 밥 해 먹는 일이 고통스러워질 때쯤 찾아오는 인생 최대의 난제.

 ‘오늘 저녁은 또 뭐 먹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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