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하는 힘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by 황경민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지금의 내가 잘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할 힘이 없다. 오늘 하루를 간신히 보냈을 뿐이다.

잠들기 힘든 긴 밤을 뒤척이고, 겨우 선잠이 들었을 때는 번잡스러운 꿈들로 무척이나 피곤하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다.

요즘 들어 더 무거워진 몸뚱이를 간신히 이끌고 지겨운 듯 눈을 찡그리면서 아침을 맞는다.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상큼하지도 않고, 맑지도 밝지도 않은 하루의 시작이다. 내재해 있는 우울과 무기력은 오늘도 나를 짓누르고 있다.


입추도 지난 8월의 무더위에서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게 힘들다고 투정하고, 내 맘대로 안된다고 짜증과 화를 삭이면서 가슴을 친다.

그런데도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더는 좌절하지 않는다. 더 바라지도 않고 절망도 없다.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인생이 늘 봄도 아니고, 여름도 가을도 아닌 걸 알기에 그날을 기다린다. 언젠가 내 영혼이 자유롭게 날아 아름다운 여행을 하는 날을 꿈꾼다.

우리들의 질병 서사가 뭐 그리 대단할 일인가. 아프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거지. 그걸 피해 갈 수는 없는 거잖아. 내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게 뭐 그리 괴로울 일인가. 내가 당뇨에 고혈압 약을 끊을 수 없는 게 뭐 그리 안타까운 일인가. 무릎관절염에 추간판수핵탈출증에 손목인대가 아파서 끙끙대는 게 대수인가. 다리를 뒤뚱거리면서 땅이 울리게 걸어가는 모습이 마냥 웃기잖아.

삼십 년 전, 서른 시간의 진통 끝에 아들을 낳았을 때 너무 좋아서 산통도 잊었었다. 그 아들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고열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산후조리는 해 보지도 못했다. 그때는 아들이 살아나기만을 기도했다. 아마도 나의 운은 건강하게 자라난 아들 하나로 충분할 수도 있다.

재작년에 큰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12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요추 골절이었다. 하마터면 하반신이 마비될 수도 있는 큰 사고였다. 지금은 건강해져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 큰 애가 몇 년 전 필리핀에 있을 때는 태풍에 미끄러져서 팔이 부러졌었다. 그곳에선 수술할 수 없어서 간신히 한국으로 와서 입원했었다. 아마도 비행기가 바로 뜨지 않았다면 장애로 남았을 테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몇 년여를 상세 불명의 불안증을 앓고 있던 셋째는 지금 약을 안 먹어도 그런대로 괜찮다. 우울과 공황증세와 더불어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잤었는데 지금은 행복하게 지낸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오늘 하루가 참 다행이고 고맙다. 아픈 남편이 아직 내 곁에 있어서 나는 아직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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