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하는 것들

긍정을 이길 고통은 없다.

by 황경민

일요일 저녁, 셋째와 막내가 오랜만에 아빠와 파스타도 먹고 사진도 찍고 카페도 다녀온다고 나갔다. 엄마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줄 알아챘는지 엄마는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얼마만의 자유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나를 크게 힘들게 하진 않지만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이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거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난 늘 혼자 있길 좋아했다.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방학이 오면 토담 뒤에 아카시아 아래서 어머니가 쪄준 토실한 감자를 눌러 먹으며 책을 읽곤 했다. 친구도 거의 없었다. 흙 만지는 걸 싫어해서 바닥에 앉지 않고 늘 볕 좋은 담벼락에 기대 있곤 했다.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공상을 하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웃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그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거려서 아예 대화에 끼지 않았다. 스스로 혼자 있는 걸 택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아직 혼자가 좋다. 한때는 너무 사랑해서 활력이 넘친 적도 있었지만 그건 훨씬 젊을 때였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강아지도 입양하고 남편까지 일곱 식구가 북적대며 살아가다 보니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물한 살의 어린 신부가 되었을 때 나는 환하게 웃었었다. 그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뱃속의 큰아이도 함께 기뻐했었지. 첫 아이를 낳은 날 코가 오뚝한 아기가 내 옆에 누웠을 때 나는 웃었지. 그 아이가 이젠 서른일곱이 되었다.

며칠 전 짜증이 솟아올라 눈물이 났던 일이 생각났다. 어쩌면 아직도 남편의 치매를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성숙한 척하면서 잘 지낸다고 말하지만 난 아직 어둠 속 저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일 밤 악몽을 꾼다.


“지금, 이 순간을 살자.”

“오늘, 기쁘게 살자.”

“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길이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

늘 이런 소리를 즐겨 하지만 막상 나는 우울하고 쓸쓸하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감사하면서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을 불안해하지 말고, 오늘 나를 웃게 하는 많은 것들을 친구로 초대해 본다.


그대와 걷고 싶다.

끝나지 않는 길이지만 사랑하는 그대와 웃으며 함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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