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내 남편
새벽이다. 오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아진다. 그는 초저녁부터 꿈나라로 떠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 패턴이 달라졌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잘 자라는 인사도 없이 이불 속으로 웅크리고 누웠다.
예전에는 어쩌다 일찍 자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재잘거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한 밤이 오면 둘이서 맥주를 마셨고, 영화를 보고 손을 마주 잡았다. 하루의 고단함을 잊고 묵주기도를 드릴 때는 천국을 사는 것 같았다.
그는 평생 큰소리를 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에게서 ‘안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수는 적었지만 유쾌했다. 매사에 긍정적이라 대책 없이 보일 때도 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랑을 수 놓으니 행복했다. 작은 키에 머리카락은 별로 없어서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챙 모자 아래 얼굴은 하얗고 동안이다. 자주 웃고 순수하고, 비폭력 대화를 할 줄 아는 부드러운 남자다. 힘들다는 내색을 안 하고, 남자니까 괜찮다고 했다.
퇴근을 하고도 집에 와서 즐겁게 가정을 돌보는 남자는 너무 멋지고 늘 감동이었다.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했던 아빠였다. 큰 소리로 웃던 그가 그립다. 아, 이 모든 게 지금도 유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건강했던 예전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멍하고, 무감동하고 무기력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다. 그는 아프다. 아픈 그를 바라보는 나도 아프다.
그래도 우린 오늘 ‘달착지근해 7510’이라는 영화를 보고 명태 조림을 먹고, 깡시장에 가서 두부를 샀다. 무더위가 조금 가신 저녁에는 강아지 율무와 산책하고 옛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믹스를 마셨다.
그는 걸었고, 무릎 아픈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지휘했다. 우리는 위대한 한 팀이다. 지상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남편은 백 살까지 살고 싶다고 고백했지만 나는 앞으로 십 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질 거로 생각한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잠깐 눈물을 훔쳤다. 미혼모인 김희선과 순진한 노총각 유해진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만남을 돌이켜 봤다. 아이 셋을 가진 이혼녀인 나와 동갑인 총각 남편의 만남은 세상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용감하게 살아왔다. 크고 작은 시련들이 있었지만, 믿음과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해왔다. 그는 그렇게 나의 수호천사가 되었다. 지금은 아파서 많은 변화가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어느 곳에든지 같은 존재이다. 그가 숨을 쉬고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랑이며 사랑이다. 그가 있어 아름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