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겸손의 원천이다
너무 똑똑한 사람은 바보를 이해 못 하고, 건강한 사람은 아픈 이의 고통을 모르며, 부자는 가난을 게으름 탓이라고 하고, 너무 영적인 사람은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똑똑하지도 못하고, 대사이상 같은 소소한 질병과 비루하게 살며, 거룩함 과는 거리가 먼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다. 핏줄이 자주 터지는 붉은 눈은 횅하다. 배는 중앙을 찾지 못하게 부풀었으며 0.1t에 육박하는 몸은 걸을 때마다 오다리가 두드러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롭다.
치매 남편은 화장실도 못 찾고 오늘 아침에는 칫솔에 비누를 묻혀서 닦으려 했다. 친정엄마가 살아오시면 복장이 터져서 다시 무덤으로 가실 거다. 어릴 적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막대기 시집을 보내느니 내가 가지!’ 하시던 목소리가 맴돈다.
엄마를 닮아 키가 크다는 이유로 1, 2월생도 아닌데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가슴에 단 가제 손수건에 코를 닦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너무 낯설었다. 겨우 이름 석 자를 쓸 뿐이고, 부끄럼이 많은 나는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면 픽하면 쓰러질 만큼 마르고 연약한 아이였고, 아무도 모르게 오줌도 몇 번 쌌다. 남자애들은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않았고, 여자애들과는 고무줄도 맞잡지 못했다. 늘 자신이 없었다. 실패할까 두려웠고, 거절당할까 무서웠다. 어른 걸음으로도 4, 50분이 걸리는 산비탈 등굣길을 늘 혼자 다녔다. 아이들과 부딪히는 게 부담스러워 아버지가 여물 줄 때 학교로 향했다.
속으로 늘 중얼거렸다. 풀숲 사이로 꼬리를 드러낸 실 뱀에게 인사했고, 냇가 옆 황토 더미에 집을 지으며 놀았다. 해가 좋은 날이면 책을 읽었고, 바람이 불면 평상에 누워 구름과 여행했다. 꿈도 모르고 현실도 잘 몰랐다. 9남매의 맏며느리로 고단한 시집살이에 지친 엄마의 고통도 몰랐다. 세상엔 나만 있었고 친구들은 동화 속의 주인공들뿐이었다.
참 어중간하고 늦되는 아이였다. 중학교까지 공부는 곧잘 했지만, 말주변도 없고 상고로 진학하면서 대학도 못 갔고, 늦은 사춘기로 취업도 마뜩잖았다. 자존감 낮은 아이는 몇 번의 연애도 시시했고, 성 인지 감수성도 떨어져서 그게 폭력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늘 잘못된 선택을 반복했고 그렇게 살았다.
겸손이 무얼까?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자만심을 갖지 않는 태도라고 한다.
나는 겸손한 사람인가? 겸손하지 않으면 며칠 안 닦은 방바닥의 끈적임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겸손해야만 하는가? 조금이라도 자만이 섞이면 겸손이 아닌가?
겸손은 나를 있는 그대로 잘 아는 것이다.
어설프고 실수가 더 익숙한 내 모습을 화내지 않고 보는 것, 나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 것, 아픔의 기억을 더 껴안아 주는 것, 꿈속에서 오줌 싸는 나를 더는 숨기지 않는 것이다.
난 오늘도 배우고 있다. 나를 웃게 하는 친구, 아름다운 그대는 내 겸손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