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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동성 Jun 18. 2021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

널뛰는 문지방 음악


음악은  힙합이랑 발라드만 아니면 제법 다양하게 듣고 있다. 아닌가? 모르겠다. 내 기준에는 꽤 다양한 것 같다. 불과 2018년 중후반까지만 해도 오로지 브릿팝만, 오아시스만 많이 듣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다양하다. 라이드를 덕질하면서 라이드에 영향을 준 뮤지션들을 찾아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졌다. 오히려 지금은 브릿팝을 전만큼 듣지 않는다. 듣는다 해도 오아시스는 잘 안 듣고 샬라탄즈나 맨선, 블러 쪽을 좀 더 듣는 것 같다. '오타쿠적인 감정' 으로는 여전히 오아시스를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듣는 음악의 폭을 넓히다 보니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늘어나게 되는데, 라이드를 좋아하다 보니 라이드 직전의 인디 밴드들을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라이드에게 직접적 영향을 준 밴드들이 특히 그런데... 스페이스맨3, 챕터하우스, 하우스 오브 러브.... 그리고 여기에 콕토 트윈스가 있다.



솔직히 콕토 트윈스 멤버 개개인에 대한 건 아는 게 전무하다. 이름도 로빈 거스리와 엘리자베스 프레이저 말고는 모른다. 멤버가 몇인지도 잘 모르겠다. 뭐 확실히 두 명 이상이겠지!(ㅋㅋㅋ) 정말 딱 음악만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콕토 트윈스를 몹시 좋아하게 됐다. 이유는 별 거 없고... 나는 실험성이 느껴지는 음악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는, 음악에서든, 그 음악을 전달하는 비주얼적인 면에서든 실험성이 느껴지는 것을 좋아한다. 뷔욕이나 보위가 그렇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도 그랬다. 대중성 있는 음악은 대중성 있어서 좋고, 대중성이 떨어져도 실험적인 음악은 실험적이라 좋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이쯤 되면 싫어하는 게 별로 없긴 한데, 여하튼 콕토 트윈스의 음악은... 뭐랄까, 이상하게 한국적인 면이 있다. 진성과 가성을 마음대로, 규칙성 없이 오가는 것은 한국의 판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의 정서는 한국에만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한 한이 느껴진다. 내가 이 생각을 한 가수가 몇 더 있는데 그게 뷔욕과 크랜베리스의 돌로레스, 그리고 현대로 와서는 미츠키다. 컬츠의 노래 중 Always Forever도 그렇다(다른 곡은 잘 모르겠다). 진가성, 저/중/고음을 마구 널뛰기한다는 점, 하이라이트로 가서는 정직하게 내지른다는 점이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처음 들은 콕토 트윈스의 곡은 Heaven or Las Vegas였다. 콕토 트윈스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것 같다. 보통은 가장 유명한 곡으로 먼저 해당 가수를 접하게 되니까? 그리고 듣자마자 홀라당 넘어갔다. 우선 시작 부분의 찰랑대는 느낌! 중독적 베이스라인.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보컬의 특징이 모두 있었다. 락을 좋아하기 전부터 주주클럽의 '나는 나' 를 좋아했고, 자우림을 좋아했다. 락을 좋아한 이후에는 크랜베리스를 듣자마자 보컬에 감겨 넘어갔다. 그런 특징이 콕토 트윈스에게도 있었다. 노래 실력이 좋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는데, 온갖 발성을 넘나드는 것이 좋았고, 'But is it Heaven or Las Vegas?' 부분에서 망설임 없이 내지르는, 공기 섞인 진성이 좋았다. 담백하게 좋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기는 한데, 보통 음악을 들을 때는 단순히 좋다는 것 외의 감정을 느끼는 법이다. 표현력이 딸려서 글로 써내지 못할 뿐.



그 다음으로 들었던 곡이 Cherry Coloured Funk 였다. 개인적으로 Heaven or Las Vegas보다 좋았다. 후렴구(?) 의 오로지 가성으로만 이루어진 부분이 그랬다. 막 질러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곧바로 Iceblink Luck으로 넘어갔는데, 이건 Cherry Coloured Funk보다 더 좋았다. 앞선 두 곡에서는 그다지 실험성을 느끼진 못했는데 이 곡에서는 실험성이 느껴졌다.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적인 느낌이 조금은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후렴구이기는 한데, verse에서는 가사가 굉장히 모호하게 들리면서 묘하게 판소리에서의 아니리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혹은 레치타티보 세코(레치타티보가 뭔지 궁금하면 알아서 찾아보시오! 대충 대사 치듯이 정해진 형식 없이 노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레미제라블같은 송스루 뮤지컬에 자주 등장, 뮤지컬 버전 On My Own을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음) 같은 느낌을 준다. 뭐 굳이 따지면 후자에 가깝기는 한데 애초에 아니리와 레치타티보가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맥락도 같은 맥락이고. 장르와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음악은 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증명 같기도 하다. 여하간, 여기까지 들었을 때 다소 실험적이라고 느꼈으나 이 때는 그건 약과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 세 곡을 필두로 듣기 시작한 콕토 트윈스의 음악은... Lorelei에 이르러서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고야 마는데...



콕토 트윈스가 스스로 '실험적인 음악을 한다' 는 자각이 있었을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는 나에게 콕토 트윈스의 이미지가 '대중성과 실험성을 제 집 문지방 드나들듯 하는 밴드' 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음 비약이 큰 verse부터가 그렇다. 대개 한 곡 내에서, 그것도 반복되는 벌스가 이렇게 음정 비약이 크게 나타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건 굳이 대중음악이 아니더라도 똑같다. 벌스에서는 잔잔히 흐르다가, 벌스와 코러스 사이에서 비약이 확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벌스 하나 내에서도, 코러스 하나 내에서도, 천천히 음이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명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 같은데,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벌스A-벌스B-코러스가 반복되는 곡이 있다고 하면, 벌스 A내에서 갑작스러운 음정 비약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벌스 B도 코러스도 마찬가지다. 다만, 벌스B와 코러스 사이에는 음정 비약이 일어날 수 있다. 벌스A와 벌스B 사이도 음정 비약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로렐라이는 시작부터 이 암묵적인 형식을 깨고 등장한다. 찰랑대는 악기로 평범하게 시작하는 듯 하더니, Get off the car 라는 가사로 치고 들어오는데, Get, off, the 사이가 모두 크게 비약한다. 스타카토로 똑똑 끊어 부르는데, 팅커벨이 수면에 일어난 동심원 형태의 파동을 몇 개씩 폴짝이며 건너뛰는 느낌이 든다. 이후 같은 형식이 세 번 이어지는데, 비욘세가 Love On Top 마지막에 그러듯이 전체적인 음정이 조금씩 높아지다가 동일 형식을 아주 약간 비틀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이미 이 시점에서 입을 딱 벌렸는데 더한 놈이 등장해 버린다. 벌스가 두 차례 끝난 뒤 등장하는, 코러스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코러스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놈이 그 주인공이다. 보컬인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는 음절 하나하나를 뱉을 때마다 그 사이에 숨을 들이킨다. We're covered by the sacred fire 라는 가사 부분이다. 이 가사를 도저히 분절해서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떨어진, 모든, 음절마다, 숨을, 크게, 들이키기, 때문, 이다. 단어, 하나도, 음절이, 나뉘면, 둘로, 나뉜다. 음악에서 숨이 차오른다. 문자 그대로의 파격(破格) 의 전형을 보여준다. '파격의 전형' 이라는 말이 굉장히 역설적이게 들리지만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뭐 어쩔 건가?



Ivo로 넘어가자. 여전히 콕토 트윈스 특유의 레치타티보스러운 면은 그대로다. 이 느낌은 어지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아니리나 레치타티보와는 반대로, 콕토 트윈스의 음악은 '가사를 전달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싶은 구석은 있다. 굳~이 단점을 꼽는다면 그게 되기는 할 건데,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가사가 들리면 들려서 좋고 안 들리면 안 들려서 좋은 것 아니겠는가? 모든 단점은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법. 적어도 나는 음악 감상에 있어서는 닫힌 자세 음악꼰대 죠죠충이 되기보다는 열린 자세가 될 것을 신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편이다. 아무튼 이 곡의 특징은 엘리자베스가 휘파람처럼 가볍게 불러내는, '공기 반 소리 반' 의 peep peep-oh 부분이다. 하도 공기가 많이 섞여서 핍-핍-오 보다는 히히 호~ 로 들리기는 한다(어차피 콕토트윈스는 가사 알아먹기 힘드니까 대충 넘기자). 이하 히-히-호로 부르도록 하겠음. 이 히-히-호는 그야말로 휙-휙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힘빠진 소리가 아니다. 각 '히' 뒤에서 끝음을 꽉 잡는다. 요들에서 나오는 발성과 유사한 것 같다. 흉성과 가성이 교차되는 것이 요들 발성인 것을 감안하면, 이 히-히-호 부분은 거의 가성이라는 부분에서 요들 발성과는 차이가 있겠으나 사운드 면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우스운 건, 내가 엘리자베스의 보컬을 들으면서 뷔욕과 돌로레스, 주주클럽이나 김윤아 따위의 보컬을 떠올렸다고 했잖은가? 김윤아가 실제로 어릴 적 요들을 배웠다는 것이다. 뭔가... 흥미로운 부분 아닌지? 확실히 보컬적인 부분이 유사한 게 아닐까 한다. 시기적으로 뷔욕과 콕토 트윈스가 상당히 비슷한데, 뷔욕/콕토트윈스-돌로레스-(한국까지 이어져)김윤아, 주주클럽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편. 실제로 80~90년대에 뷔욕에 영향받은 보컬들이 꽤 나왔던 것 같은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김윤아 본인이 뷔욕을 존경한다고 한 바가 있는 것으로 안다. 얘기가 또 삼천포로 빠졌는데 뷔욕과 돌로레스한테서도 요들 같은 사운드가 상당수 있다고 생각한다. 얘기하고 싶었던 건 그것이고~



Wax And Wane 이야기를 해 보자. 귀찮으니 이하 왁스 앤 왜인이라고 정직하게 부르겠다. 묘하게 불협화음같은 느낌의 베이스가 중독적인 드럼 박자와 함께 등장한다. 이게 꽤 길게 지속되는데, 언뜻 오토바이가 달리는 것 같기도 한 사운드다. 한참을 그러다 엘리자베스의 보컬이 툭 튀어나온다. 콕토 트윈스 음악의 상당수가 그러하듯, 시작부터 격을 깨고 나타난다. 엘리자베스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염소 같은 소리를 낸다. 그의 원래 보컬이 이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의도적이다. 여전히 요들처럼 일부러 목소리를 뒤집고, 거기에 염소 같은 소리를 덧붙이는 것이다. 뒤집히는 보컬과 염소 소리가 겹칠 때도 있다. 대체 어느 대중적인 밴드가 이런 시도를 하려고 든단 말인가? 작업하면서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절대 대중적일 수 없는 사운드라는 것을? 그럼에도 줏대있게 이를 밀어붙인 밴드의 시도가 놀라울 뿐이다(당연히 타이틀곡은 못 됐겠지). 계속 오토바이가 달리는 듯한 베이스는 엘리자베스의 공기 섞인 보컬과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비틀대는 듯한, 중독성 강한 드럼 박자다. 각자 떼놓고 생각하면 그 무엇 하나도 서로와 어울리는 게 없다. 베이스로 오토바이를 타고(feat. 산울림-기타로 오도바이를 타자), 드럼은 비틀대고, 보컬은 웬 염소 소리를 정직하게 내지르며 바람같이 흘러간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불협화음이 모이면 이상할 정도로 정신을 빼놓고 듣게 되는 노래가 나온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허락한 마약..? 왁스 앤 왜인은 번역하면 흥망성쇠라는 뜻인데, 초를 굳히고 녹이는 것도 왁스/왜인으로 표현되곤 한다. 또한 달이 차고 기우는, 삭과 망도 왁스/왜인으로 표현된다. 계속 반복되는 코러스의 가사에서는 The devil might steady/We wax and we wane이라는 말을 하는데, 세 가지 모두로 번역될 수 있다. '악마는 한결같겠지만/우리는 흥하고 망하지' 가 하나, '악마는 한결같겠지만/우리는 굳고 녹지'가 둘, '악마는 한결같겠지만/우리는 차고 기울지' 가 셋인데, 셋 모두 핵심은 변화에 초점이 있다. 악마는 변함없는 악을 보이지만 사람은 변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의미에 차이가 느껴진다. 첫째는 악마의 초월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는 초월자이므로 흥망성쇠가 없다. 다만 인간은 초월자가 아니므로 악한 사람도 흥망성쇠를 거친다. 둘째는 인간성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첫째와 매한가지로 악마는 초월적인 존재이므로 변화가 없다. 다만 인간은 인간이므로 때로는 단단하다가, 또 때로는 녹아내려 괴로워하기도 한다. 첫번째에 비해서는 덜 염세적이고, 더 긍정적으로 해석될 면이 있다. 세 번째는 선악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달은 차고 기울며 밝은 면을 보였다가 어두운 면을 보이는데, 망을 선에, 삭을 악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악마는 한결같이 악이겠지만 인간은 선악을 오간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셈. '변화' 라는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점이 재밌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고, 가사 내용은 오리무중이다. 콕토 트윈스 가사가 원래 그렇다.



Sugar Hiccup은 앞선 곡들에 비해 실험성이 덜하고 대중성이 붙은 편이다. 뭐 대중성으로 따지면 Heaven Or Las Vegas 만한 것이 없겠지마는...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드는 곡인데, 누군가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로 딱이라고 하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자장가로는 좀... 뭣하긴 한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보단 어른을 위한 자장가에 가깝다. 이 곡을 꺼내온 이유는 곡 자체보다는 곡 제목 때문인데, 콕토 트윈스 음악이 다 그렇지만 당최 '설탕 딸꾹질' 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콕토트윈스 특유의 난해함이 극대화된 제목 같달까? 설탕을 너무 퍼먹어서 슈가하이가 와 딸꾹질을 한단 소린가? 말은 된다. 아니면 마약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Makes the earth toss and tumble, sugar hiccup(지구를 튕기고 굴려라), Makes it pink, soft and smooth, sugar hiccup(분홍색으로, 폭신하고 부드럽게 만들으렴, 설탕 딸꾹질) 따위의 가사를 보면 마약이라는 가설에도 제법 힘이 실린다. 웃긴 점은 계속 반복되는 가사인 'Sugar hiccup while she reels' 가 콕토트윈스답게 애매모호한 발음과 만나니 Sugar hiccup oh Cherrios' 처럼 들리는데(지극히 내 기준임) 이 체리오스(혹은 치리오스)가 유명 시리얼 이름이라는 것이다. 설탕 딸꾹질에 시리얼이라니, 이게 무슨 절묘한 조화람! 개취로 치리오스 시리얼은 별로긴 한데.


컴필레이션 앨범, the pink opaque.


상단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CD로 하나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밴드인 것 치고는 음반이 없는 편. 콕토 트윈스는 나에게 있어서 순전히 소장용인 바이닐도 망설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밴드 중 하나다! 내가 콕토 트윈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인데, 라이드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으로 먼저 슈게이징에 익숙해지지 않았더라면 콕토 트윈스에 절대 입문하지 못했을 거라는 점이다. 콕토 트윈스는 '다소 거칠' 다. 음악이 거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음악은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때로는 깨질 듯 유약하게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대중성과 감정에 있어서는 다소 거칠다. 대중성을 잡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이는 밴드들이 있는 반면, 콕토 트윈스는 그것 따위는 제 알 바 아니라는듯이 대중성이라는 문을 제 집 문지방처럼 마구 넘나든다. 언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염소 소리를 냈다가, 또 언제는 음절마다 끊어 숨을 들이켰다가, 또 언제는 '내키니까 해 볼까' 같은 느낌으로 Heaven Or Las Vegas같은 꽤나 대중적인 곡을 내놓는다(여담이지만 제법 한국 정서를 건드리는 곡이라고 생각). 그렇게 거칠게 이리 흘렀다 저리 흘렀다, 파도같이, 해일같이 몰아친다. 또한 격을 거칠게 깨고 들어온다. 섬세하기 짝이 없는 음악을 하는 주제에, 흔히 암묵적으로 지키는 '대중음악의 격' 을 마구 깨는 것을 보다 보면 내가 다 휩쓸리는 기분이다. 감정을 넘나드는 음악이다. 마구 휙휙 뒤집히는 엘리자베스의 발성, 대중성과 실험성의 경계, 음정의 비약을 좇아 보라. 정신이 없고 온갖 백팔번뇌와 감정이 다 지나간다. 세상만물이 다 들어 있는 느낌이 든단 말이다. 이리 저리 제멋대로 널을 뛴다. 그래서 나는 콕토 트윈스의 음악을 단순하게 '널뛰는 문지방 음악' 으로 대충 정의내린다. 왜, 내가 계속 말하고 있잖은가, 제 집 문지방마냥 종횡무진이라고.


중앙이 엘리자베스인것밖에 모르겠다(ㅋㅋㅋ) 3인 밴드인가본데?


불친절하고 다소 거칠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고 백스텝 칠 수도 있는 밴드다. 나는 인디쪽을 라이드 들으면서 건드리기 시작했는데, 라이드도 처음에는 입문을 어려워했던 걸 생각하면 장벽을 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라이드는 슈게이징 밴드 치고는 대중성이 굉장히 높고 입문도 쉬운 편이다. 슬로우다이브부터 조금 더 어려워지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나 초기의 러쉬 음반으로 가면 더 어려워진다. 라이드로 시작한 나는 지금 와서는 그 벽이 모두 깨져 있기는 한데, 아마 라이드 아니었으면 애초에 콕토 트윈스 듣지도 못했을 것이며 장벽을 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거칠다. 물론 콕토 트윈스는 슈게이징 밴드는 아니다. 슈게이징 밴드에게 영향을 준, 프리-슈게이징 시대의 밴드라고 할 수 있겠지. 프리-슈게이징 밴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다. 내가 느끼기에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그래도 콕토 트윈스에 비하면 대중성이 꽤 있다. 콕토 트윈스는... 모르겠다. 작정하면 대중성을 해낸다. 그런데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음악 하나 보다. 그래서 좋다. 곡 하나 내에서도 대중성과 비대중성을 마구 널뛰는 그 대담함에 혀가 내둘러질 뿐이다. 거칠면서도 섬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그 자체인 문장을 해내는 밴드라, 정말로 '널뛰는 문지방 음악' 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아참, 라이드의 마크 가드너와 콕토 트윈스의 로빈 거스리는 친밀한 관계로, 함께 꾸준히 음악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콕토 트윈스에 대한 라이드의 첫인상이 웃기긴 하다. 첫인상? 아니, 첫인상은 아닐 수도 있긴 한데... 라이드가 콕토 트윈스 팬이었기 때문에, 같은 페스티벌에 설 기회가 생기자 마크 가드너는 인사를 건네고자 그들의 드레싱 룸을 찾아간다. 드레싱룸 문을 열자마자 본 것은 의자가 날아다니는 광경이었고 이에 마크가 '음...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군' 하고 백스텝 밟았단 이야기. 아무튼 마크와 로빈, 둘이 함께한 앨범 Universal Road를 들어보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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