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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동성 Jun 18. 2021

사랑은 연필로 쓰고 음악은 CD로 들으세요


음악을 좋아하면서 소위 '오타쿠질' 을 하다 보니 음악 좋아하는 친구가 많이 생겼다. 인터넷 시대의 장점이다. 오프라인 콘서트를 가서 만난 인연은 오프라인 콘서트에서 끝나지 않고 온라인으로 이어진다. 가끔은 '저와 그 때 만나신 분 찾습니다' 라는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알음알음 퍼다 나르고, 당사자가 찾아온다. 차갑기 짝이 없는 LED 너머의 온정이다. 결국엔 액정 너머에도 다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내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생기고, 다들 음반을 모은다. 음악을 사랑하니까요~


전부 아날로그 음반을 모으는 사람들이지만, 그 형태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수집용으로, 누군가는 감상용으로 모은다. 그래서 음향기기에 돈을 덜 쓰는 사람도, 더 쓰는 사람도 있다. 선호하는 physical 음반의 형태도 모두 다르다.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그래서 재밌다. 너의 취향보다 나의 취향이 더 고급스럽고 더 낫다, 하는 신경전같은 건 없다. 음악은 경쟁이 아니니까. 집에 턴테이블이 없다고 해서 바이닐 모으지 말라는 법도 없다. 노엘 갤러거가 집에 기타를 세워만 둬도 멋지다고 한 것처럼, 집에 바이닐을 꽂아만 둬도 멋있는 법이다. 단순히 '레트로적' 만족감을 가장 크게 준다는 이유로 카세트를 모으는 사람, '간지' 가 난다는 이유로 바이닐을 모으는 사람, 편의성이 가장 좋다고 CD를 모으는 사람, 다 좋다. 그런 제각각의 철학이 모여서 음반 수집이라는 행위 자체가 더 즐거워진다.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렇단다.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은 소중하다.



RIDE/OX4_ The Best of. 해시태그란 존재가 생기기도 전인데 띄어쓰기 자리에 언더바가 있는 게 새삼 흥미롭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나는 바이닐과 CD를 모으는데, 카세트는 모으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서, 카세트는 라이드 멤버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 사지 않는다. 오직 라이드 멤버들과 관련된 카세트만 모으려고 한다. 외에는 엄마가 준 카세트가 전부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이닐과 CD 수집을 먼저 시작했는데 카세트까지 사면 돈 너무 깨질 것 같아서 그렇다. 수집을 시작할 땐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가난한 직장인인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 조만간 가난한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기도 하다. 아무튼, 난 비주얼, 소위 눈뽕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그래서 '그냥 두기만 해도 멋있는' 것을 원한다. 바이닐이 그랬기 때문에, 바이닐로 수집을 시작했다. 2018년, 문화역서울 레코드페어에서 빌리 아일리쉬의 Don't Smile At Me를 구매한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바이닐을 늘려 갔다. 그 때 턴테이블도 같이 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매해 포터블형을 샀다. 지금 같으면 오디오테크니카를 구매했겠지. 집에 바이닐을 전시해 두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너무 만족스러웠다.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구매한 레코드를 기록하는 기록 수첩도 장만했는데, 그 땐 수첩이 의미없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지금은 음반이 너무 많아서 수첩이고 뭐고 쓸 엄두도 안 나기 때문에 그만둔지 꽤 되었다. 종류불문 전부 합해서 백 장이 족히 넘는데 무슨 기록이야? 기록을 하지 않았어도 음반을 보면 음반을 사던 날의 기억이 따라오므로 나에겐 음반 자체가 일기장이다. 바이닐 일기장.



베이스 줄 밑에 쏙 들어가서 재밌었다.





CD는 원래 딱히 모을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모으게 됐는데, 때는 역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라이드가 아닌 오아시스였다. 락 입문을 원래 오아시스로 많이 하니까. 그래서 오아시스의 음반을 모두 모으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싱글까진 다 모을 수 없어도, 정규라도 모으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다 비싸게 팔길래 머리를 굴렸다. 알라딘 사이트에 접속해서 중고매장 검색을 했다.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매장에 음반을 내다 팔면 절대 비싼 값에 팔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도했던 거다(온라인이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결과는 성공적. 하루만에 일산, 종로, 광화문, 그리고 또... 기억은 다 나지 않지만, 그 날 대부분의 시간을 대중교통에서 할애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오아시스 투어 DVD, Lord Don’t Slow Me Down도 그 때 운 좋게 함께 구했다. 그렇게 내 오아시스 정규앨범 드래곤볼이 모두 모였다. 정규음반 일곱 개+마스터플랜, 전에 사 뒀던 스탑 더 클락. 사실 스탑 더 클락이 가장 처음 구매한 오아시스 음반이었을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고등학교 동창(년앤년 좋아하는 친구) 이랑 서점인지 중고서점인지 갔다가 샀던가? 그리고 스탑 더 클락은 이내 2018년 노엘의 하플버 내한, 입국 공항에서 노엘의 사인이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 음반은 소중히 보관하다가... 훗날 노엘에게서 사인을 세 번인가 더 받고 팔게 된다(나에게 2019년은 대체 무슨 해였던 건지 모르겠다). 사인이 많아지니까 딱히 아끼는 음반이 아니라서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고, 팔아도 그 사인을 받던 나의 기억은 생생하기 때문에 괜찮겠다 싶었다. 친구한테 팔천원 받고 팔았다. 나는 사인 좀 받았다고 프리미엄 붙여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는 사람이 아니니까. 기왕 팔 거면 친구한테 파는 게 좋고.



최애밴드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오아시스와 함께. 사진의 음반은 일본에서만 내 준 Don't Go Away.



그치만 실은, 그 때까지도 CD의 매력은 잘 몰랐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CD 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냥 관상용으로 모은 것이다. 바이닐에 애정이 더 큰 편이었다. 바이닐은 크기도 크고, 좀 더 뭐랄까, 레트로-아날로그 뽕 맞기에 좋았으니까. 사실 카세트에 별 흥미가 없는 것은 크기가 째끄매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는데, 내가 무조건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그만... 나의 CD 수집은 계속됐지만, 정말 좋아하는 밴드의 CD만 샀다. 그 말인즉슨, 오아시스, 헤비 스테레오, 하플버, 리암 갤러거, 라이드, 허리케인 넘버 원, 마크 가드너, 아무튼 라이드나 오아시스 멤버와 관련된 씨디만 샀다는 얘기다. 내 방 CD장에 꽂혀 있는 것은 전부 그런 CD들이었다. 특히 2018년 12월경부터 최애밴드가 라이드로 바뀌면서 과장 좀 섞어 목숨 걸고 라이드 음반을 모았으니 그 때부터 CD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아마도 작년 이맘때, 벼르고 벼르던 CD플레이어를 구매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미뤘는지 모르겠다. 아마 '턴테이블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다. 점점 '바이닐로는 없고 CD로는 있는' 음반이 늘어나며 CD를 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처음 튼 음반이 뭔지는 전혀 기억 안 나는데, 추정키로는 허리케인 넘버 원의 Only The Strongest Will Survive 아니면 오아시스 Whatever 싱글이었을 것이다(그렇다! 난 오아시스 싱글도 모은다!). 왜 그렇게 추측하냐 하면, 음원이나 바이닐로는 느낄 수 없었던 현악기의 풍부함에 자리에서 펄쩍 뛰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 샀던 라이드 바이닐이 웨더다이어리다. 2018년 11월 말에 구입. 최애밴드가 라이드 되기 직전이고,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악기 A, B, C가 있다고 가정하자. A가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를 100, B가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를 50, C가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를 20이라고 치겠다. 그간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따위로 들어온 디지털 음원은 A음역대를 50, B음역대를 25, C음역대를 10으로 팍 줄여서 납작하게 만들어 귀에 갖다 꽂는 방식이었다. 특정 사운드가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EQ를 맞출 수 있기는 한데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CD의 음질은 A, B, C 모두 100, 50, 20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느낌이었다. 사운드의 풍부함이 달랐다. 악기 하나가 G 노트를 연주한다고 해도, 그 G 노트에는 G 노트만 있는 게 아니다. 악기에 따라 주파수의 형태가 다르고, 켜켜이 쌓여 전달되는 음역대가 다르다. 내가 뭐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자세한 것은 설명 못 하겠다. 아무튼 디지털 음원은 그 모든 것을 떼 버리고 G노트라는 음 하나만을 전달한다. CD는 아니다. 악기가 고유하게 가지는 주파수의 형태가 귀를 간지럽히는 느낌이다. 훨씬 부드럽고, 풍부하다. 그간 디지털로 음악을 주로 들어온 나는 부드러운 음질은 선명도와 반비례 관계인 줄 알았다. 부드럽게 들리면 요소 하나하나 선명히 듣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선명한 악기 소리를 블러 처리한 것처럼 문지르면, 전체적으로 훨씬 조화롭게 들리겠지만 각 악기 특유의 음색은 집중하기 어려울 거라고. 근데 착각이었다. 그건 그냥 디지털의 한계이지, 아날로그 음반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다. CD는 훨씬 부드럽고 조화롭게 들렸지만, 귀를 기울이면 각 악기의 음색이 말할 수 없이 빛났다. 나는 CD 플레이어를 너무 늦게 샀다. 정말 그랬다. 진작 샀어야 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스테레오포닉스 둘, 플라시보 하나, 스웨이드 둘, 모하비3 하나.




그 날을 기점으로 나의 음반 수집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에는 정말 좋아하는 밴드의 좋아하는 CD만 사려고 헀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노래가 한 곡이라도 들어 있다면 CD를 산다. CD가 또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잠깐 쉬는 소강상태인데, 한동안 엄청 사댔다. 게다가 마침 때맞추어 엄마가 젊을 때 썼던 거라면서 CD플레이어를 선물해 주셨다. 모든 게 나를 CD의 길로 이끌었다. 알라딘 온라인중고를 아주 쏠쏠하게 이용 중.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라도 있으면 사다 보니 모르는 노래를 순서대로 쭉 듣게 되는데, 그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음반의 트랙리스트는 그냥 아무렇게나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이유가 있는, 뮤지션이 만들어놓은 순서다. 미술관의 큐레이션이 동선과 감상을 고려해 짜여 있는 것처럼, 음반 트랙리스트도 큐레이션이고 스토리텔링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이 스토리텔링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음반은 Mansun의 Attack Of The Grey Lantern 이었다. 최근이라기엔 꽤 오래 전에 산 음반인데, 그 후에 산 게 아쉽게도 이걸 넘어서질 못해서... 사실 그 음반은 사기 전부터 좋아하기는 했다. Wide Open Space 로 알게 됐는데(그게 제일 유명하니까), 음반 전체가 명반이다. 나중엔 Little Kix를 구매했다. 아 그리고 도프레코드에서 Wide Open Space 7인치 화이트 마블(?) 바이닐을 팔길래 샀는데 사인반이었다. 7인치 싱글치고는 좀 비싼 감은 있었는데 그냥 딱 구하기 힘든 음반 가격 정도라 구매한 건데, 열었더니 프린트도 아니고 진짜 마카로 되어 있는 사인이 있지 뭐야? 사인반이란 말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나만 이득 봤다. 졸지에 맨선 네 명 모두의 사인이 있게 됐다. 내가 라이드 사인도 아직 세 명밖에 못 받아봤는데 조금 웃기긴 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 폴 드레이퍼 말고 멤버 이름 모른다....



맨선 이야기 하다가 말이 삼천포로 거하게 샜는데, 어쨌건 하고 싶었던 얘기는 CD가 음악감상을 위해서는 제격이라는 거다. 말 그대로 수집을 위한 수집이라면 카세트와 바이닐도 좋기는 하다. 그러나 카세트는 음질이 좀 떨어진다. 많이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나기도 한다. 바이닐은... 좋게 들으면 들을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돈이... 너무 많이 깨진다. 가난한 대학생-가난한 직장인 루트를 거치고 있는 나에게는 CD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최적이다. 솔직히 말해, 바이닐은 번거로워서 잘 듣지 않게 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포터블 턴테이블을 여즉 교체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디오테크니카 턴테이블을 갖고 싶은 건 맞는데, 이십~삼십 사이를 깨면서 살 정도로 바이닐을 자주 돌리지 않기 때문에... 바이닐을 처음 샀을때 돌리면 이후로 한동안 안 돌린다. 가끔 생각났을때나 꺼낸다. 그런데 씨디는 자주 생각이 나서 자주 듣는다.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어김없이 하나는 골라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산울림이 당긴다. 회사에서 몰래 쓰는 글이라 마음에 안 드는 국힙이 뒤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내 취향은 힙합이랑 정말 안 맞는다. 정작 앤디 벨은 힙합 잘만 듣던데)



필름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찍은 음반 사진. 아날로그의 정점이다. 간지 나지?



우리 집에는 사실 겁나 비싼 5.1채널 스피커가 있다. 베이스 우퍼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내가 산 건 아니고, 아빠가 샀다. 솔직히 왜 샀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가족 중 이렇게 음악 듣는 취미를 가진 사람은 나 혼자인데 말이다(블루레이 플레이어는 왜 산 거야? 블루레이 사지도 않으면서). 어쨌든 뭐, 있으니까,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디지털 음원을 종종 듣곤 했다. 당연히 좋은 스피커니까 음질부터가 크게 다르다. 디지털 음원인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조그맣고 얼마 하지도 않는 CD 플레이어로 듣는 것이 더 좋을 정도다. 스피커의 품질보다 음원 자체가 음악의 품질에 있어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CD 플레이어를 거기 연결해서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안 해 봤다. 왜냐고? 내 음반과 플레이어들은 전부 자취방에 있고, 스피커는 본가에 있으니까. 나중에 자취방 빼면 그게 다 본가 방으로 옮겨 올 텐데, 그 때 한번 해 볼 작정이다. 꽤나 기대가 된다. 어디 얼마나 끝내주는 음질이 나올지. 나는 이제 완전히 CD stan이 되었다. 강경CD파다. 감상을 위해서라면 CD, 수집을 위해서라면 바이닐과 카세트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카세트는 안 모으지만 여하간 그렇다. 물론 남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간지 나 보이고 싶다면 바이닐을 모으도록! 기왕이면 7인치 말고 12인치로. 그래야 사람들이 신기해하니까. 어쨌건 난 CD도 금방 백 장 채우게 생겼고 바이닐도 50장은 넘게 있기 때문에 간지는 충족이다. 하하!



 

엄마가 준 사이먼 앤 가펑클 카세트. 제목도 웃긴데 사실 카세트 뒤에 노래 제목 번역되어 있는 게 더 걸작이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전영록씨가 그러더라. 그래야 지우기 쉽다나 뭐라나. 그럼 나는 음악은 CD로 들으라고 하겠다. 그래야 즐기기 좋으니까. 밀크티 한 잔 타놓고, CD 틀어 놓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행복이 뭐 별 건가? 따뜻한 머그 한 잔 손에 들려 있고, CD플레이어에서 음악이 나오면 그게 행복의 정의이다. 여행할 때는 CD 두어 장을 엄선해서 휴대용 CD 플레이어와 함께 가 보자. KTX에 앉아서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살아 본 적도 없는 90년대 초의 젊은이가 된 기분이다. 이런, 시국때문에 곤란하겠구나! 언젠가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어디 먼 곳을 가면서 꼭 챙겨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겪지도 못한 시기를 그리워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 꼭 살아 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아날로그 음악의 힘이다. 책은 간접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힘은 책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도 그렇다. 특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태동하던 시기의 시간적, 공간적 사회 배경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는 상태라면 더욱이 그렇다.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에 숨은 배경을 알고 있다면 더 그렇다. 아날로그 음악은 책만큼이나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가끔 흔들림에 CD가 튀는 것조차 음악의 일부가 된다. 아날로그 음악의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면 거기가 나 있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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