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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동성 Jun 18. 2021

생일 나들이

3년만에 누군가와 함께한 생일

대학을 진학하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쭉 내 생일은 아무것도 아닌 날이었다. 태어난 날이고 하니 혼자 소소하게 편의점이나 카페 조각케익으로 축하 정도는 했지만 굳이 누군가를 만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일 파티 한 번 하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사실 올해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은 것은 첫째, 우리 집안이 생일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꾼 후 세 명의 생일이 5월 5일, 7일, 13일로 몰린 데다 어버이날은 8일이었기 때문이고, 둘째, 그냥 내가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8년/2019년 생일 자축... 2017년은 사진도 안 남았다


5월 4일, 다음날인 아빠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본가로 올라갔다. 간 김에 오빠 생일, 어버이날을 지나 한참 머무르다 내 생일 전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가 당일 아침에 올라왔다.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긴 했는데, 내가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을 아는 엄마가 점심으로 미역국을 먹인 뒤 밖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내 생일 케이크 대용인 주문제작 타르트를 받고(케이크는 이미 두 판을 먹었고 신물이 난 탓이다) 드라이브를 하기 시작했다. 북한을 보여주겠다며 엄마가 탄 도로 건너편에는 정말 이곳저곳 빨갛게 흙살을 드러낸 북한의 산이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땅과의 거리 강 건너 150m, 크게 소리를 지르면 들릴 거리였다.


“계세요 소리지르면 계신다고 할까요?”

“근데 대개는 거기 안 계실 걸?”

“그르네.”


그러면서 엄마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북한과 너무 가까워 일반인들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마을에서 고구마밭을 분양한 적이 있단다. 엄마아빠는 그 고구마밭을 분양받고 주기적으로 가서 관리를 해 주었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민통선 안 제한구역이라 인증 카드 같은 것을 받아서 보여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작은 마을을 종종 둘러보았는데, 그 안에 허준의 묘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관광을 하려면 못 할 것도 없으나(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된다) 보통은 사람이 잘 오지 않아 그 마을 거주민들만 무심히 오간단다. 제한구역이니만큼 거주민들이라고 해도 원래 집터가 거기에 있던 사람들 뿐이다. 토지매매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땅이고, 만약 매매가 가능하다고 해도 통일을 기대하고 묵혀뒀다가 비싸게 팔 게 분명하다고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아주 세속적인 시각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도 제한 구역 안에 견학을 간 적이 한 번 있다. 초등학생 때고 너무 어렸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였다. 다같이 탄 버스는 너른 도로를 한참 신나게 달렸고 이내 도착한 통제선 앞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 아저씨가 통과 서류를 검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군인 아저씨’ 들은 아저씨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통제선 앞에서 서류 검사하는 일 같은 것을 진짜 ‘군인 아저씨’ 가 했을 리 만무하다. 아마도 군 복무중이던 ‘군인 청년’ 이었겠지?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데 그 구역을 지나던 기억만이 선명하다. 북한 여행의 기회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어릴 적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고 사촌이 자랑하듯 보여주었던 사진이 머릿속에 어렴풋 스쳤다. 당시엔 생각 없이 넘겼는데 그게 참, 좋은 경험이었겠구나.



저기 보이는 산이 북한의 산은 아니다 저건 남한 땅


그러고 나서 차를 돌려 엄마가 종종 가곤 했다는 카페에 들렀다. 1층은 작은 도서관, 2층은 카페로 구성된 곳이었는데 2층에는 우산으로 장식한 예쁜 테라스가 있다. 이 날은 하늘도 파랗고 날씨가 좋아 테라스의 의자에 눕듯이 앉아있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나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저 사진도 카페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은 것이다. 자유로 너머로 보이는 임진강이다.



포인트가 있는 사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우산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좀 힘겨워 보이기는 했는데 용케 잘 버티고 있었다(저 뒤집어진 친구는 예외다). 형형색색 매달린 모습이 예뻐서 고개를 쭉 쳐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딱 무지개 우산 라인에 빈 공간이 하나, 뒤집힌 친구가 하나 있어서 단조롭지 않고 재미있는 사진이 찍혔다. 무지개색을 보면서 퀴어 퍼레이드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무심코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읽을 자신이 없는 책들이 잔뜩이었다


음료를 주문하자 엄마가 내려가서 책 구경 한 번 하고 오라고 했다. 일 층으로 가볍게 내려가자 아주 작은 도서관이 하나 나왔다. 곳곳에 앉을 곳이 있었고, 어느 책장 아래에는 만화카페처럼 작은 굴이 파여 있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아예 없어 먼지와 함께 정적이 앉았다. 그게 참 기분이 좋아서 괜히 숨 들이켰다가 비염 때문에 재채기를 대차게 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와 둘이 나들이 갈 때 들르는 곳은 항상 묘하게 책이 꼭 있었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출판단지 지혜의 숲인데, 그 곳은 책의 개수가 어마어마하다. 또 안에 있는 파스타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보면 밖에 거위가 놀러 온다. 사람한테 애교 부리고 뭐 얻어먹고 가곤 했다. 아직도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에게 파주는 아주 살기 좋은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낙서 하고 가라는 의미에서 커다란 캔버스가 하나 놓여 있길래 미대생 짬바를 살려 갈색 색연필로 간단한 크로키를 하나 하고 2층에 돌아오니 음료가 나와 있었다.


예쁘고 맛있었다(중요)


나는 곡물라떼를, 엄마는 매화차를 시켰는데 매화차가 아주 예뻤다. 맛은 둘 다 좋았지만 다음에 또 올 일이 있다면 차를 시키고 싶었다. 향이 은은하니 천천히 올라오는 데다가 티팟 안에 매화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사진 찍기 딱인 탓이다. 엄마와 나는 음료를 마시면서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했다. 별다를 것 없는 말들이었지만 그게 참 즐거웠다. 원래 의미 없는 대화가 제일 재밌는 법이다.


생일 타르트... 타르트는 역시 견과류다


그리고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가지볶음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난 가지볶음이면 밥 세그릇은 뚝딱할 수 있다. 내 생일이라고 엄마가 특별히 해준 거라서 기대에 부응할 겸 실컷 먹었다. 배가 이미 부른 상태였지만 또 내 생일 타르트는 포기 못 하지, 초 꽂고 불고 하나씩 야금대며 맛봤다. 역시 타르트는 견과류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일 타르트도 전부 안 달고 맛있긴 했지만 내 입맛엔 견과류다. 피칸파이 호두파이 모두 내가 먹어치웠다. 그러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서 드러누웠는데,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지만 나는 오늘 생일자인데다가 어차피 소띠에 황소자리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하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대단한 사람. 멋진 사람.


그리고 이 날은 내 생일이자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드러머가 NHS 코로나 관련 기금 마련을 위해 열두시간 드럼 마라톤 대장정을 진행한 날이었다. 나는 엄마와 나들이를 하는 중간중간 계속 이 방송을 확인했었다.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열두시간을 꽉 채우고 종료했는데, 그저 대단하다고밖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의 리듬 세션을 실컷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


삼 년만의 생일 나들이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혼자 보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간 생일에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년 생일엔 뭐 하고 있을까? 혼자 한참 보냈고, 올해는 가족과 보냈으니 친구들 불러 생일 파티라도 할까? 그때는 코로나가 사라져 있으면 좋겠다. 뭐라도 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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