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동성 Jun 18. 2021

대중성 떨어지는 슈게이징이 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트위터 플텍계정에 혼자 썼던 내용이지만 공유하고 싶어서 조금 언어를 정리하여 다시 써봅니다.

개인의 의견이 상당수 쓰여 있으므로 무턱대고 그렇구나 하지 마시고 이런 의견도 있구나 정도만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마블발로 시작한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슈게이징? 어떤 미친놈들이 기타 페달을 줄줄이 달고 몽환적인 소음 만드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서 그런 사운드가 유행씩이나 하고? 아니 그게 어떻게 유행을 하지?' 라는 트윗을 보았다. 우선 공감에 웃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인 것을 알고, 그 트윗을 썼을 사람이 필시 슈게이징을 좋아하는, 하다못해 꽤 자주 듣는 사람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슈게이징 듣는 사람들은 다 우스개소리로 '슈게이징은 찐따음악이다' 라는 말을 한다. 당장 나만해도 그렇다. 펫사운즈(단골펍)에서 슈게이징 나오면 심장 부여잡고 문자 그대로 바닥을 뒹구는 주제에 '슈게이징을 누가 듣냐' 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슈게이징 듣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해도 된다. 안 듣는 사람은 안 된다.


슈게이징은 대중성이 떨어진다. 지하철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이게 지금 노래에서 나오는 소음인지 지하철 소음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흔히 진공청소기 소리에 비유할 정도로 형태를 띠지 않은 소음이 소용돌이친다. 가사는 뭐라고 하는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흩어져 있기도 하고, 멜로디조차 불확실하다. 멜로디가 비교적 잘 들리는 슈게이징 밴드도 있는가 하면(라이드) 진짜 이게 뭐야 싶은 밴드도 있다(마블발). 어쨌거나 대중성이 높다곤 할 수 없다. 그런 게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는 실제로 조금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아니 어떻게? 이딴 게 유행을 한다고?


슈게이징의 인기 배경을 따지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80년대, '기타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보았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타음악계는 다소 침체되기 시작했다. 대신 디스코, 하우스, 테크노, 신스팝 등이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레이브 파티가 유행하며 저마다 야광 팔찌를 끼고 근교 파티에 머리를 디밀고 레이빙을 했다. 레이브 파티같이 불빛이 번쩍대는 곳에서 락을 틀기 애매한 것은 당연지사. 물론 그 가운데 인기를 얻은 락밴드도 많기는 하지만, 락앤롤 자체가 과거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 기타음악의 시대는 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새로운 시도 전반을 통틀어 뉴웨이브라고 부른다. 이 시기, 레이빙 유행에 편승하여 레이브 음악에 락을 덧붙이는 음악이 나오기도 했다(프라이멀 스크림). 그렇기 때문에 디스코, 하우스, 테크노 등과 뉴웨이브는 아예 따로 떼어 설명할 수는 없게 된다. 신스팝도 사실 뉴웨이브의 일종이다. 더 큐어로 대표되는 고딕락, 고딕락에 영향을 받은 슈게이징까지 결국은 하나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타 음악을 좋아하던 리스너를 만족시키긴 쉽지 않다. 그들은... 꽤나 높은 확률로 보수락꼰대들이다. 과거 기타음악의 아성을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타 음악의 사이키델리아를. 물론 내로라 하는 락 음악은 여전히 많았다... 여전히 건재한 메탈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 을 좇는다. 그리고 슈게이징이 등장한다.


슈게이징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사운드를 '기타를 중심으로' 내는 음악이다. 신디사이저나 미디 편집을 통한 소음이 아니라, 아날로그 악기, 특히 기타에 이펙터를 줄줄이 매달아 상상하지 못했던 소음을 낸다는 점에서 침체되어있던 기타음악 시장을 환기할만 했다. 아직 기타로 할 수 있는 것이 남았다, 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슈게이징은 다양한 면에서 60~70년대 락 음악의 사이키델리아를 떠올리게 했다. 그 시기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은 대체제가 되었겠다. 지저스 앤 메리 체인, 스페이스맨3, 콕토 트윈스, 챕터하우스 등의 밴드로 조금씩 꿈틀대던 '그것' 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필두로 완전히 슈게이징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슈게이징 밴드들이 갑자기 우후죽순 등장한다. 브릿팝 밴드인 블러도 이 시기에는 브릿팝이 아니라 슈게이징 밴드로 분류됐다(애초에 브릿팝 개념이 제대로 세워지지도 않았던 시기다).


그러나 여전히, 슈게이징이 대중적이었는가? 의 질문에는 딱 잘라 '그렇다' 고 대답할 수는 없다. '이딴 음악이 인기있었다고?' 싶을 정도로 꽤나 대중의 지지를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말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가? 그렇다기에는 슈게이징 밴드 중 탑차트10위 안에 든 밴드가 거의 전무하다. 라이드와 러쉬는 탑차트에 들긴 했다. 그러나 두 밴드 전부, 차트인한 앨범이나 싱글 중 하나는 브릿팝으로 분류된다. 약간 이전으로 가서 스페이스맨3, 하우스 오브 러브, 콕토 트윈스, 갤럭시500을 좀 들여다보자.




갤럭시500, 스페이스맨3 모두 '슈게이징 밴드' 라고는 할 수 없으나 슈게이징에 꽤나 영향을 준, 아주 약간 이전의 밴드인데, 차트가 텅 비어 있다. 약간 배달의민족에서 '텅~' 을 보는 기분이다. 콕토트윈스나 하우스 오브 러브는 상황이 좀 낫긴 한데, 탑차트 내에서 유지되는 기간도 문제다. 오래 유지된 편은 아니다. 슈게이징과 프로토-슈게이징 밴드가 어느정도 인기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그 때도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었다. 인디 씬으로 분류됐다. 얼마나 대중적이지 못했으면 사운드, NME, 멜로디메이커가 이 밴드들을 신랄하게 깐 것이 장르 이름이 되었겠는가.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지들끼리 다 해먹는 씬)... 이것이 슈게이징 밴드들을 칭하던 말이다. 대중은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좋다고 으쌰으쌰했다는 소리다. 실제로 상당수 슈게이징 밴드들은 서로 알고 지냈다. 현대에 와서는 '슈게이징의 글라스톤베리' 라고 불리는 Slough 페스티벌에서는 슈게이징 밴드의 멤버들끼리 친목을 쌓던 사진이 있다. 서로의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다만 동장르 밴드들끼리 친목을 쌓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닌데 유독 슈게이징 밴드들이 저 소리를 들은 것은 슈게이징의 '비대중성' 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문가와 언론 탓이 클 것이다. 더구나 슈게이징은 이펙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발밑의 페달보드를 응시하며 연주할 수밖에 없는데,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다' 는 오해를 낳기에는 충분했을 게 분명하다. 관객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대중적이지 못한 음악.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게 꽤나 인기를 얻고 있는 음악. 결국 사운드 잡지를 필두로 하여 각종 음악언론이 이들을 신랄하게 깎아내리기 위해 최초로 shoegaz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과도기였기 때문에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언론을 놀리기라도 하듯 대중은 이 슈게이즈를 장르 이름으로 채택해 버린다.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에서 시작한 단어가 아이러니하게 대중에 의해 장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슈게이징은 반절만 대중적인 장르가 된다. 여전히 차트인하기는 어려운 장르임에는 확실했으나, 리스너들에게는 슈게이징에 대한 인식을 아주 깊게 남겨 버렸다. 이 시기 잠깐 반짝했던 슈게이징은 이내 브릿팝과 그런지 락에 자리를 내주고, 일부 슈게이징 밴드는 브릿팝으로 전향해 성공을 거두었으며(러쉬-러브라이프), 또 일부 슈게이징 밴드는 장렬히 실패한다(라이드 후기의 앨범 두 개). 슬로우다이브는 4AD와 계약하고 mojave3라는 이름으로 슈게이징에서 드림팝으로 전향한다.


그러므로 슈게이징은 '과도기였기 때문에 반짝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장르가 되겠다. 이딴 게 어떻게 인기를 얻은 거야? 에는 과도기라는 배경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장르 치고는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꽤나 큰 편이다. 앞서 말했듯 슈게이징은 브릿팝 괴물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지 락도 있으나 그런지락은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구가했으니 제외하고 말하겠다) 그리고 브릿팝 밴드의 상당수가 꽤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내고, 비틀즈 같은 과거 날것의 기타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데, 여기에 슈게이징이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오아시스도 사이키델릭한 편이고, 불후의 브릿팝 명반, 맨선의 Attack of the Grey Lantern 역시 꽤나 사이키델릭하다. 슈게이징이 먼저 과거의 사이키델리아를 가져오며 포문을 열고 그 뒤를 브릿팝이 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오아시스가 라이브에서 쓰던 방식이 바로 월 오브 사운드인데, 월 오브 사운드란 소리를 꽉꽉 채워 쌓아서 벽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월 오브 사운드 역시 다수 슈게이징 밴드가 먼저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소음으로 꽉 채워서 벽을 쌓는데 월 오브 사운드가 될 수밖에.


그리고 포스트락이 등장하는데, 이 쪽은 슈게이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슈게이징보다도 전위적이다. 장르보다는 일종의 움직임에 가까운 듯하다. 아예 의도부터가 '기타 음악의 전형을 뛰어넘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낸다' 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적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대중의 픽을 받은 것이 모과이. DIIV도 슈게이징 사운드를 다시 가져왔다. 그리고 시규어 로스는 대중의 선택을 크게 받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드림팝, 슬로우코어 등의 장르가 슈게이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텐데 시가렛 애프터 섹스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짧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슈게이징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재결합을 기점으로 부흥기를 맞는 것처럼 보인다. 슬로우다이브도 재결합했으며, 라이드도 재결합했다. 슈게이징 씬의 빅3가 다시 모였다. 분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슬금슬금 다시 올라오더니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슈게이징이 현대 대중음악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게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야, 기타로 기타 같지 않은 사운드를, 웬 진공청소기나 지하철, 바람같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기타가 기타 사운드의 전형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시사했을 테니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적이지는 못하지만, 나를 비롯한 일부 젊은층에게 다시 지지받는 것이 훗날 대중음악에 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슈게이징을 '대충 반쯤 전위적이고 대충 반쯤 대중적인 알수없는 장르' 라고 생각한다. 슈게이징 노이즈만큼이나 혼란하고 알 수 없는 장르라고나 할까...


여담: 슈게이징이 영국 장르라 거의 영국 이야기만 했는데 캘리포니아의 페이즐리 언더그라운드 씬(쟁글팝같은 사운드가 특징)도 슈게이징에 꽤나 영향을 주었다는 것으로 들었다. 찰랑대는 기타 사운드가 들리는 슈게이징 곡들을 생각해보면 그럴듯하다. 또 현대 슈게이징의 부흥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이것도 꽤나 흥미롭지?

그나저나 슈게이징이 인기가 뚝 떨어지는데도 꿋꿋이 슈게이징-드림팝 사운드를 붙들고 버티던 4AD가 있어준 덕분에 나는 더 많은 슈게이징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4AD 짱




작가의 이전글 '오아시스'는 '카타르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