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만큼 본 뜻이 왜곡 폄하된 단어 일 것입니다. 급진적인 좌파, 사회주의자의 오랜 득세, ‘빨리빨리’라는 말고 대변되는 사회 분위기가 보수주의를 나쁜 의미를 가진 단어로 만들었습니다. 보수주의는 재산과 지위를 지키려는 사상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양반처럼 체통과 체면을 지키려고 가식을 떠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도 아닙니다. 시대에 뒤떨어져서 새로운 문물, 혁신과 개혁을 거부하는 나이 든 꼰대를 지칭하는 단어도 아닙니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상류층들이 갖고 있는 고정된 관념도 아닙니다.
보수주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재능, 능력, 성실함, 창의성, 그리고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서 많은 재산을 갖게 된 것을 정당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능력과 성실함이 아니라, 단지 어떤 사람이라는 “조건”만으로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재산을 갖는다면 보수주의자는 그것을 부당하게 여길 것입니다. 보수주의자에게 정의란 정당한 몫에 부합하는 권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능력과 성실함 혹은 지성과 인격에 따른 적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 그에게서 연민을 느끼지만, 그것이 없음에도 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질 때 그에게서 의분을 느낀다면 마음속에 보수주의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변변치 않다고 생각하는 착하고 근면하게 사는 사람들,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 중에 보수주의자들이 더 많습니다. 이에 비해 급진주의자, 진보주의자 중에는 개혁과 혁신을 주장하면서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을 챙겨 떼돈을 벌고, 권력을 독차지한 이해타산에 밝은 기회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제도도 완벽하지 않음을 압니다. 인간은 지옥은 만들 수 있어도, 천국은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급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사는 이상향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남들이 저질렀을 때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사소한 사치나, 실수를 공론화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짓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한 순간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에게서 인생전반에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의 잘못을 만회할 일을 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는 법을 제정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모두 선악이 뒤섞인 피조물이며, 보다 나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하지만 그런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한계를 이해한다면 보수주의자라고 할 것입니다.
보수주의는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경험지향적 사상입니다. 경험에서 축적된 지식과 지혜가 아주 많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보수적 국가, 보수주의 국민이 많은 나라에서는 코로나 같은 예외상태에서도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지식에 위배되는 과학주의, 혹은 정치적 독단에 저항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보수주의란 용어는 고대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철학은 있었습니다. 스토아철학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지혜, 용기, 절제 또는 중용 네 가지 미덕을 실천하며 자연에 순응해 사는 보다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철학입니다. 그 후에는 고도로 정제된 종교에서 보수주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을 실천하고 악을 거부하는 것은 종교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중 기독교의 10 계명은 보수주의의 정수입니다. 살인하지 마라, 거짓증언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마라, 이웃의 재물을 탐하지 마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보수주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근대 이후 만들어진 헌법의 인간 기본권 세 가지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재산권)은 10 계명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 중에는 종교인이 많습니다.
보수주의란 용어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하던 무렵에 등장합니다.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광신적인 혁명 분자들이 파괴와 전복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을 단지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목을 잘랐습니다. 나중에는 혁명분자들끼리의 암투가 벌어져 서로 모함하고 중상하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혁명 후 다시 왕정이 복원되었고,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이 잘린 것 치고는 결과가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혁명분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고, 인생을 살아볼 만하게 만드는 문명의 요소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일관적인 생각의 체계를 수립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근대의 보수주의입니다. 영국에서는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을 썼는데 많은 사가들은 그를 보수주의의 선구자로 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