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데 그것이 글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순간부터 읽어줄 사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와 같아서 생산자인 글쓴이는 소비자인 독자에 비해 언제나 불리한 처지에 있다. 무명인의 글은 보석이라도 쓰레기 취급받지만, 유명인의 글은 쓰레기라도 보석 취급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아무나 쓰고 읽는 현시대에 더 심해졌다. 명품 브랜드는 품질이 떨어져도 비싸게 팔리지만 명품이 아닌 것은 품질이 좋아도 싸게 팔리는 것과 같다.
글이 갖고 있는 또 하나 약점은 읽을 만한 사람만 읽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은 아무나 읽고 제멋대로 해석하더라도 반박도 변호도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색하고, 연구하고, 깨달음을 얻고 쓴 글이라도 무지한 사람에 의해 짓밟히고 무시당하여 글쓴이가 오히려 무식한 사람으로 조롱받는다. 글이 그 시대의 통념에 배치되면 유언비어 유포자,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심지어 미치광이로 경멸당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글을 즉각 개제할 수 있고, 댓글과 좋아요, 싫어요를 통해 즉각 반응을 볼 수 있는 지금은 아무리 오랫동안 숙고하고 쓴 글이라도 즉각 매도당하고 경멸당하여 가치가 상실당할 수 있다. 오랜 수태기간과 산고 속에 태어났어도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죽는 글들 중에는 차라리 사라지면 좋으련만 좀비가 되어 계속 학대받거나 악용되는 것도 있다. 글이 아무나에게 읽히고 제멋대로 해석되는 것은 아무리 정성 들여 써도,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난해하게 써도, 논문처럼 논리적으로 써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다.
또 하나 글의 약점은 쓰인 목적, 취지, 본래의 뜻과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익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무식한 사람도 명언이나 유명한 시의 한 두절쯤은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으로 자신의 무식함을 감춘다. 교도소의 살인범은 회개한 사람처럼 행세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달달 외기도 한다. 어느 정치인은 책으로 가득한 자신의 서재를 언론에 노출하여 수 만권 책을 읽었다고 자신을 광고한다. 독서량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다면 읽지 않는 것과 마찬 가지인데 말이다. 어떤 사기꾼은 법망을 피하여 사기 치기 위해 법전을 읽는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어떤 사람은 책을 너무나 많이 읽은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도 있다.
글이 갖고 있는 이 같은 약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류의 위대한 성현인 예수 그리스도, 공자, 싯다르타,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글을 남기지 않았다. 전해져 내려오는 글들은 전부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아 적은 것들과 후대의 사가나 교인이 쓴 것들이다.
글이 이러한 약점을 갖고 있어도, 글은 여전히 지혜와 지식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후대에게 전하는 가장 요긴한 방법이다. 글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앎의 기쁨을 준다. 어떤 글 중에는 손으로 쓰지 않고 키보드로 쓰여 모니터에 오른 글이지만, 묘하게도 글쓴이의 심정과 진실함이 느껴지는 글이 있다. 이것이 글이 주는 오묘한 힘일 것이다. 그런 글들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어둠 속을 비추는 한줄기 빛처럼 희망을 준다. 글이 갖고 있는 운명적인 약점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