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내 가슴이 또 한 번 찢어졌다.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나 참혹해서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하였다. 너희들도 아빠와 같은 생각이겠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무섭고 처참한 광경이겠지. 그렇다. 이 시대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위험하고 끔찍한 시대다. 아빠가 비록 부족하지만, 어떻게 하면 탈 없이 이 시대를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해 너희들에게 몇 가지 해 줄 말이 있다. 긴 글은 보지 않고, 아빠의 말은 잔소리로 여긴다는 것을 아빠도 잘 안다. 아빠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대이니 아빠의 말에 조금만 귀 기울여주지 않으련? 최대한 짧게 말해 볼 테니..
첫째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다.
진부한 말로 시작해서 미안하다만, 중요한 말이라 첫 번째로 하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이성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아서 동물과 다름없이 된다. 동물처럼 된다는 것은 인간에 비해 죽어도 되는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단다. 이 말은 인간을 죽여도 되는 하찮은 존재로 만들려면 생각 없는 인간으로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죽여도 되는 존재는 죽여도 죄가 되지 않으며, 가책이라는 자신에게 내리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잔혹한 독재자들은 백성을 생각 없이 사는 노예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단다. 나치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할 때 그들을 죽여도 되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법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배하였단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하라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면 녹색 신호등에 길을 건너고, 아침에 이를 닦고,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일상적인 일들까지 왜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너희들이 깊게 생각해야 할 ‘왜’는 선택할 자유를 제약하는 명령이나 관습, 그리고 위기 상태에서 강요되는 여러 조항들이다. 비록 그것들이 너희들의 선생님, 선배, 친구, 동료, 대통령, 질병관리청장에 의한 것이라도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 행동해야 한다.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 있다면 당연히 따르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예’ 할 수 있으면 ‘아니요’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선’이라 부르고,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지만 이것을 이 시대의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악이 선의 모습을 선이 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은 내게 해가 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별이 아주 어렵다. 분별의 어려움 때문에 분별을 스스로 하지 않고 남에게 맡기면 너희들의 분별력은 자라지 못하고 퇴화될 것이고,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 남으로부터 죽음을 당해도 되는 하찮은 존재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태원의 생지옥에 빠지지 않고 사는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아빠는 ‘생각하는 존엄한 존재로서의 나’가 되는 것이라고 꼽고 싶다.
둘째는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경악할 일이 벌어졌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이데거는 “두려움은 사고를 마비시키고, 생각을 잃게 만든다.”라고 했다. 두려움만큼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감정은 없다. 두려움은 권력에 대한 의지와 정반대로 무력할 의지라서, 두려움을 유발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두려움은 이성을 가리는 장막 같은 것이다. 두려움을 걷어내야만 이성이 작동한다. 두려움은 의식과 성찰에 선행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어떤 합리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주장으로 설득되지 않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권력자의 말만 맹신하게 되는 것이다. 잔혹한 독재자들은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어느 독재국가나 똑같이 공포정치가 만연하는 것이란다.
조종당하고,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수 만 가지 미디어에서 멀어져야 한다.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갖고 있고, 현명하더라도, 수 만 가지 미디어의 세뇌는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쓰면 쓸수록 안심은 되지 않고 두려움만 커지는 효과적인 두려움 유발 장치란다. 그러니 당장 마스크부터 벗어던지거라. 그리고 TV를 끄고, 휴대폰을 서랍에 넣어두어라. 머리에 사라지지 않는 여러 두려운 상념들은 실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라. 두려움은 두려워해야만 생기는 것이다. 두려움을 아무리 유발해도 그것에 초연한 사람이라면, 능히 두려움을 유발하는 자를 무릎 꿇게 할 수 있지 않겠니?
셋째는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네가 어떤 행동을 한 후에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지?”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진정으로 네가 원해서 한 행동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행동일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행동이라면 반드시 남에게나, 너 자신에게 해롭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자신에게 해를 입혀도 됨을 허락하는 것과 다름없고, 이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이 다하는 관습이라서, 나라에서 명령한 것이라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분위기가 그래서,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했다면 그것은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 행동이라면, 남의 노예, 나라의 노예, 재미의 노예, 분위기의 노예,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노예로서 한 행동은 아닐까?
만약에 네가 사람은 어차피 죽고,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어떻게 살아도 마찬가지라서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것은 결과가 나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자신이 스스로 한 일이라고 자랑을 하고,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잘 성장한 건강한 인간은 자연적으로 선을 따르고, 악을 거부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인간이 타고난 본래의 감정이다. 반면에 예속과 강제는 저항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우리는 금단의 열매에 가장 강력한 욕망을 느끼게 마련이다.” -프랑수와 라블레-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는 것은 윤리적으로 살라는 말과 궁극적으로 같다. 윤리적으로 살라는 말은 매우 어렵고 고지식한 말로 들리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이성적인 시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태원 젊은이들의 사인이 무엇이든 간에 진정으로 원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빠는 이태원 참극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22.10.30, Dr.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