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씨 탓인지 어제 밤늦은 시간까지 책 읽기를 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곤하게 늦잠을 잤습니다.
반려견 용이가 침대로 다가와서는 아침밥을 안 주었다고 달라는 재촉을 합니다.
이 녀석은 요구할 것이 있으면 언젠가부터 나에게 다가와 손등을 핥으면서 묘한 나름의 특정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시계도 볼 줄 모를 터인데 아침 8 시만 되면
밥때를 알아차리고 달라는 신호를 합니다.
"그래 두 시간이나 지났구나."
"미안해"
"늦잠을 자 버렸네."
사료를 배식하고 물을 그릇에 담아 준비해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아프지 말고"
내 말을 알아들은 듯이 용이는 쫑긋 선 귀를 부드럽게 바짝 뒤로 눕혀 부치고 꼬리를 빠르게 흔듭니다.
난 또 용이 이름을 불러봅니다.
"용이"
불렀더니 제 이름 부른다고 먹던 밥을 두고
내게로 달려와 꼬리를 반복하여 흔들며 몸까지 돌리면서 원을 만들며 돕니다.
키울수록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어느 해 7월 한여름
작은 딸이 간절히 원하여 입양을 한 그날,
남편에게 입양 여부에 대해 문의 전화를 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털 있는 아이 데려오면 이혼한다."는
간단하고 명료하여 권위적이었습니다.
나와 딸은 이 말에 거세게 반발하듯이
내심으로는 "그래 이혼하자." 하고 무장하여
딸과 나는 입양을 결정하고 합심하여 입양을 강행함으로써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된 녀석입니다.
집에 온 첫날부터 남편의 거부 의사를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의 문젯거리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배변하고 오는 생후 3개월. 이해가 되지 않고 신기했습니다. 기저귀를 넉넉하게 준비했는데도 단 한 장도 쓰지 않은 녀석입니다.
나는 녀석에게 용변을 화장실에서 보고 나올 때마다 간식을 주고 보상하였습니다. 보상한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데도 잘 학습되어 아파트 안에서 별 어려움 없이 커 갔습니다.
게다가 순하고 매너도 있어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받고 우리에게도 웃음과 행복을 주는 녀석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보금자리인 작은 별에서도 이 녀석은 우리의 든든한 파수꾼입니다.
택배기사의 발소리도 엘리베이터의 미동도 새들의 속삭임도 한 치의 허용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직함과 충직함을 보여줍니다.
견종들의 충성이야 어디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주인 찾아 삼 백리를 간 이야기는 전래 동화 속에서의 이야기이고, 또 경찰견들의 수색견으로의 무용담도 많긴 하지만, 전 우리랑 살던 또 다른 녀석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래전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어린 진돗개를 데려 왔습니다. 그 개 이름은 '우리 집에 새로 왔다'는 의미로 이름을 ‘새롬’이라 짓고, 단독 주택 마당에서 키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는 퇴근 후에 손수 목재를 사 오셔서 새롬의 집을 크고 단단하게 지어 주는 수고와 부지런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준 대로 새롬이는 잘 자랐고, 형제자매가 많은 우리는 서로 앞을 다투듯이 학교 마치고 올 때, 너나없이 슈퍼에서 간식을 새롬이의 관심을 받기 위해 경쟁하듯이 사다가 나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새롬이는 비만해져 갔지만,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롬은 먹고 남은 것을 정원의 흙을 파서 먹이를 숨기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개도 '저장이나 저축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입주를 해야 했습니다, 새롬의 거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롬이를 데려가자고 했고, 부모님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결국 새롬이를 우리가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간 사이에 우리들 몰래 봉고차에 태워서 아버지의 지인인 선생님 댁으로 선심 쓰듯이
멀리 보내 버렸습니다.
새롬이가 경북 구미의 어느 퇴직한 선생님의 댁에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날, 우리 없는 사이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새롬이와 이별한 나를 비롯한 동생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었고, 마침내 우리는 그날 집단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새롬이가 없는 일상으로 태연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차츰 새롬이의 존재는 잊혀 갔습니다.
아파트 입주가 남지 않은 12월 겨울 어느 날 자정 가까운 무렵이었습니다. 제 방 가까이 있는 쇠대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책을 읽다가 들은 것이라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인 것 같았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대문을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나는 숨죽이고 소리를 들으려고 있는데 다시 대문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살며시 다가가서 방의 창문을 열어서 바깥을 보았습니다. 골목길의 희뿌연한 어두운 가로등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이런 일이? “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두 달 전에 우리 곁을 떠났던 백구인 새롬이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맨발로 뛰어나가 대문을 열었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이 녀석은 반갑다는 표현으로 두 발로 서서 내 얼굴을 핥다가 오줌을 누렇게 지리더니
내가 마중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내 손길을
의식한 듯 그만 추운 길바닥에 좋다고 덜렁
사지를 펼치며 드러눕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새롬이를 데리고 거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 줄 잊고 "새롬이 돌아왔다"는 나의 소리에 동생들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나왔고, 모두 새롬이가 나타난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또 아닌 “밤중에 무슨 거짓말이냐?”며 나에게 핀잔까지 하면서 나오더니 새롬이를 보고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거실 조명을 모두 켜고 살펴보니 새롬이의 형색이 말이 아닙니다. 이 녀석이 백구가 아니라 흑구 검은 개에 가깝게 되어 있었습니다. 털에는 때가 묻고 엉망이 되어, 우리 집을 찾아온다고 안간힘을 쓴 모습이, 마치 거지개가 되어 개고생 한 티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롬이를 만나 기뻐서 울고, 그의 형색이 슬퍼서 울면서, 새롬이 불쌍하고 걱정되어 울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우리는 새롬이와 다시는 이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엄마의 성화로 다시 새롬이를 봉고차에 태워서 다시 못 찾아오게 휘장까지 쳐서 다른 선생님의 농장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보냈습니다.
우리는 새롬이와 다시 이별하였습니다. 그 이후 나는 정이 든 강아지와의 이별은 너무 서러운 것이라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을 앞세우면 곤란해집니다, 용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잊고 있었던 새롬이에 대한 기억은 반려견 용이와 같이 지내면서 그 옛날 새롬이의 모습들이 교차합니다.
경북 구미까지의 거리가 그 당시 집에서 150 킬로가 넘는 거리. 운전을 해 보면 통과해야 하는 터널의 수도 그렇거니와 자가용으로도 1시간 넘게 걸리는 그 멀고 험한 거리를, 더군다나 새롬이가 혼자서 왔다는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새롬 그 녀석은 어떻게 걸어서 그 먼 길을 따라 우리 집을 찾아왔을까?라는 생각과 마킹을 하면서 걸어간 거리도 아닌데 ,,,
처음 남의 차를 타고 밤에 휘장 씌어 간 길을 용하게 집을 찾아올 수 있었는지?
그 영험하고 신기함에 대한 궁금증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마음으로 옛 주인을 찾아왔다가 그 수고로움도 헛되이 한 채, 다시 강제로 되돌아갈 그때의 마음은 어땠는지?
지금 생각하면 속이 아련하고 답답하고 참 인간으로서 못 할 짓을 하였다는 것과 죄를 많이 짓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파트 입주와 부모란 권력 앞에 아무 대항도 할 수 없었던 젊은 날의 무기력함을 책망하는 후회도 하였습니다만, 세월의 망각 속에 침몰해 버렸던 기억의 파편들을 용이의 존재를 통해 다시 모아 봅니다.
새롬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음 생은 좋은 곳에 행복하게 태어나거라.
내일 아침에 용이에게 아침을 주고 나서 용이 보다 앞서 우리와 살았던 새롬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용이는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