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기는
아마도
첫 봄비의 천둥소리에
개구리가 놀라는
봄 오는 길목이다.
첫 딸을 제왕절개로 낳고
쉬지 못하고
4주 만에
직장에 복귀하는 바람에
고질병 혹처럼 붙었다.
젊었을 땐 성수기라 몰랐고
점점 나이테 두터워질 땐
어딘지 모르게
통증과 무거움이
온몸을 사로 잡는다.
봄 몸살 횟수가
디지털시계처럼
규칙적이고 모범적으로
고지서 되어 찾아오면
비로소
허튼 산후조리를
날로 먹은 대가였음을 안다.
그리고는 이내
지불해야 하는
의무감이
낭패감으로 둔갑한다.
마음대로 숼 수 없는
구속의 시공간.
봄비 올 즈음 ,
시작되는 봄옴살은
기압골의 영향을
거칠게 받아 반응한다.
신기 들린 정확한 몸은
여지없이
빈틈없는 기상예보를
삼 십 년 넘게
굴절없이 반복한다.
유명한 의사도
단연코 필요 없다.
오로지
맹신하는
흙침대교의 광신자처럼
온도 잔뜩 올려 놓고
굽은 새우처럼
이리 굽히고
저리 굽히며
겨울잠 자는
이성은 마비된
한 마리 짐승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사 양념처럼 갈아 넣고
모진 시간 달궈지면
거짓말처럼
원상복구가 된다.
언제나
이맘쯤
새로운 봄이 올 때면
먼저
아플 것을 겁먹고
도망치고 싶은
새가슴이 되지만
직장과 딸린 가족이 눈에 밟히고
발목을 잡아서
포기한 지난 시간 시간들.
삶은 앞으로만 달린다.
그 사이 딸은 어른이 되었다.
오늘 그 아이 생일
생일상을 정성스레 차린다.
고운 선물과
사랑의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올봄은 봄몸살에서
도망쳐 나온 건가
나름의 민간요법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다.
진저리나던
봄몸살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나의
새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