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까진 이랬다

by 애이미


그녀를 만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를 위로하고 위로하여
그를 따라 그곳으로 가면


부추지짐 두어 장 부쳐 놓고 대문 들어서는 나를 향해
"이젠 동서 몫이야"
하고 그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던 나보다 두 살 적은 손윗 동서

역시 또 다른 그녀.


어김없이 남아선호 담론이 거창하게 강의되고

아무도 한마디도 벙어리처럼 저항 안 하고 들숨 날숨만 쉬고 있다.

돼먹지 않은 서열로 언론의 자유도 박탈당하고
개인행복추구권은 법전 속에 갇힌 죽은 어휘일 뿐

그래도 가족이라 참아 혈압은 표준치를 너머 고공행진 한다.

언젠가 저녁 주방에서 동서가 말하길


'동서 !어머니가 또 아들 낳아란 이야기 나오면
이번에는 꼭 이젠 셋째는 낳지 않는다'는 이야길 하자고

제의했다. 혼자 말하기 그러니 같이 말하자길래 나는
동서와 의기투합 하기로 했다.

동병상련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하루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나누고, 시아주버님과 동서네 딸 두 명과 그리고 우리 집 딸과 앉아 있었다.


뽀로퉁하게 표정을 한 시어머니가 다짜고짜로

중얼거리듯이


" 남의 집은 아들을 쑥쑥 잘도 낳더니만. 너들은

와 아들 소식이 없냐?"면서

며느리들을 문책하듯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들 보고 "밖에 가서라도 낳아오든지해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두 아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무슨 며느리가 고목발영할 것도 아니고ᆢ'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듯한 남편이 한 마디 하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계속 반복되는 고장 난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 같은 잔소리가 그날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참았다. 늘 초하루부터 투쟁하기가 그래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며느리는 확실히 죄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을 못하는 등신들이란 내용으로 이해되는 문맥이 ᆢ

생물학도 모르는 무식한 말들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간에 진정 가만있는 것은 등신임을 인정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던가,


그래서 엊저녁 동서와 나는 연합 작전을 하기로 했던 동맹이 생각났다.

동서이긴 하나 내가 나이가 위니 내가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 불편한 자리에 말도 아닌 소리를 이십 년 넘게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혼자라도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딸도 남의 손에서 키우는 데 세 명은 키워줄 사람도
없어서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어 하고 있는 도중에
난데없이 무늬만 효자인 시아주버님이 대뜸 나서며 어설픈 서울말 억양으로

"엄마에게 버릇없이 말 대답한다" 면서
모두의 앞에서 나를 나무라는 것이다.
졸지에 난 무례한 사람이 되었다. 순간 멘붕이 왔고, 대꾸하려다가 남편의 얼굴을 보니 대책 없는 남의 편이 아닌가?


사방은 적막했다.
무슨 시대착오적 발상인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왜 희망 고문을 노인에게 하는 것인가?
무슨 말의 내용보다 말한 자체를 책망하는지 별의별 생각이 들고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한번 공론화하여 문제 해결을 해보려는 나의 싹을 뭉개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 두 딸을 태워 자가용을 타고 그곳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규범적 부모 밑에서 자란 환경 때문인가? 생각만 했을 뿐 실행하지 못한 바보였다.

"많이 배운 네가 참아야 한다"는 친정 부모의 말이 내귓전을 울려 내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은
왜 그렇게밖에 못할까?


상한 마음을 내색은 않았지만 이 공간의 평화를 깬 사람이 나란 이상하고 묘한 분위기가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했단다.

내가 뭘 잘못한 거죠?

밖에서 낳아 오란 말이 같은 여자로서 할 말인가?

난 그 말을 한 사람과 그 말에 아무 미동도 않던 아들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형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쪽 팔려서 어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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